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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조선왕조실록(諱 禮蒙)
이름: 孤巖/準一


등록일: 2015-12-07 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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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諱 禮蒙)

[행 동지중추부사 김예몽의 졸기 예종 1년 기축(1469, 성화 5) 10월 18일(무진)]

행 동지중추부사(行同知中樞府事) 김예몽(金禮蒙)이 졸(卒)하니, 1일 간 철조(輟朝)하고, 조문을 하고, 부의하고 전(奠)을 올렸다. 김예몽은 온아(溫雅)하며 청수(淸修)하고, 박문(博文) 호학(好學)하고 사부(詞賦)에도 공교하였다. 일찍이 과거에 급제하여 집현전(集賢殿)에 뽑혀서 들어가고, 여러 조정(朝廷)을 대대로 섬겨 벼슬이 공조 판서(工曹判書)에 이르렀다. 일찍이 성균 사성(成均司成)을 겸하니, 매양 제생(諸生)의 제술(製述)을 가려서 시험하여 우등(優等)한 자가 있으면 반드시 포장(褒奬)을 주어 권장하여 그로 하여금 성취(成就)하게 하고, 무릇 사람과 사귀는 데 애안(崖岸)을 세우지 않았다. 이때에 이르러 병으로 걸신(乞身)하고, 충주(忠州)에 돌아가 있다가 졸하니, 사림(士林)들이 애도(哀悼)하였다. 시호(諡號)를 문경(文敬)이라 하였는데, 부지런히 배우고 묻기를 좋아하는 것을 문(文)이라 하고, 부지런히 일을 받드는 것을 경(敬)이라 한다. 아들 김덕원(金德源)과 김성원(金性源)이 있었는데, 모두 과거에 급제하였다.【원전】 8 집 425 면

[김예몽(金禮蒙) 인물정보 요약]

- 1406(태종 6)∼1469(예종 1). 조선 초기의 문신. 본관은 광산. 자는 경보(敬甫). 아버지는
   사성(司成) 소(遡)이다.
- 1429년(세종 11) 생원시를 거쳐 1432년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하고 집현전정자에 제수되었다.
- 그뒤 저작랑(著作郞)을 거쳐 감찰에 제수되어, 1440년 통신사의 서장관으로 일본에 다녀온 뒤
  과거의 시관이 되어 많은 인재를 등용시켰다.
- 1447년 집현전교리로 승진하고, 문종이 즉위하자 지승문원사(知承文院事)가 되었다. 단종 때에는
   집의·집현전부제학을 지내고 세조 즉위에 공을 세워 좌익공신에 책록되고 호조참의에 올랐다.
- 그뒤 1460년(세조 6)에는 인순부윤(仁順府尹)으로서 사은정사(謝恩正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고,
  동지중추원사를 거쳐 사성이 되었다.이때에 후학들에 대한 교육에 힘써 자주 시험을 보고 제술이
  우수한 자에게는 반드시 포상하여 학문을 권장하였다.
- 그뒤 강원도관찰사가 되었다가 대사성에 올랐고, 1466년 발영시(拔英試)에 아들 성원(性源)과 함께
  급제하여 한때 조야의 선망을 받았다. 이어 1468년 공조판서에 올랐으나 신병으로 사임하고, 고향인
  충주로 낙향하였다.
- 사람을 보는 안목이 매우 뛰어나 시관이 되어 뽑은 인재가 거의 뒷날 조정의 현직을 차지하여 빙감
  (氷鑑)이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였다. 성품이 온아하고 청렴하였으며, 학문을 좋아하고 사부(詞賦)에도
  능하였다. 시호는 문경(文敬)이다.
  (참고문헌 世宗實錄,文宗實錄,世祖實錄,睿宗實錄,國朝榜目)

[고려사  수사관(修史官)]
봉렬대부(奉列大夫) 직 집현전(直集賢殿) 지제교(知制敎) 세자 우필선(世子右弼善) 겸(兼) 좌중호(左中護) 춘추관 기주관(春秋館記注官) 신(臣) 김예몽(金禮蒙)


세종 15년 (1433) 07/07(무오)
임금이 집현전 부교리 이명겸(李鳴謙)·유의손(柳義孫)·박사 이사철(李思哲)·저작랑 김예몽(金禮蒙)으로 학관(學官)을 삼고, 예문 제학 정인지(鄭麟趾)로 제조를 삼았다.【원전】 3 집 489 면

세종 16년 (1434) 01/10(무자)
........ 생각하옵건대, 신석견·남수문·김예몽 등은 벌써부터 그 문명이 제배(?輩)에 뛰어난 바 있으며, 또 석견·수문은 일찍이 사가(賜暇)하심을 입어 다년간 연구를 쌓아서 자못 그 효과를 이룬 바 있사온데...바라옵건대, 재능에 따라 임용하시는 밝으신 단안을 내리시와, 신석견·남수문·김예몽 등을 도로 본전(本殿)으로 나오게 하시어 그 학문을 전공하게 하시면 이보다 다행함이 없을까 하나이다.”.........
임금이 영의정 황희와 좌의정 맹사성에게 문의하기를,“집현전 상서에 신석견·남수문·김예몽 등에게 주어진 중국어 수습의 과제를 그만두도록 하고, 본전의 근무로 도로 돌려주도록 청하였으나, 내 생각에는 문학 연구와 중국어를 겸해 수습하여도 학문 연구에 손실을 가져올 리가 없을 것이고, 또 오경과 사서를 모두 중국말로 읽는다면 국가에 보익됨이 많으리라고 믿으니, 이를 논의하여 계달하라.”
  하였다. 황희 등이 아뢰기를, “순전히 중국어를 학습하게 하여 사대에 도움이 되도록 하는 것이 옳습니다.”하니, 임금이 말하기를,“그럴 것이다.”하였다.【원전】 3 집 536 면

세종 21년 (1439) 05/04(신해)
.......  효강이 또 아뢰기를,“고득종이 이미 중국에 봉명을 받잡고 사신으로 갔다가 일찍이 탐오(貪汚)를 범하였거늘, 지금 일본에 사신으로 간다면 반드시 절조(節操)가 없을 것이옵니다. 다행히 감찰 김예몽(金禮蒙)이 검찰관이 됨을 힘입어서 신 등이 생각하기를, 득종이 조금 두려워함을 알 것이라고 하였더니, 이제 예몽의 감찰의 임명을 바꾸시면 조심하는 마음이 없을까 두렵사옵니다. 감찰을 보내어 검찰하기를 청하옵니다.”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외국에 사신을 보낼 적에 으레 감찰을 보낸다면 옳거니와, 만약 득종을 위하여 특별히 감찰을 보내는 것은 잘못이다. 이미 그 사람을 믿고 타국에 사신으로 보내는데, 다시 의심이 있어서 특별히 감찰을 보내는 것은 옳지 못함이 없겠느냐.”하였다.【원전】 4 집 210 면

세종 22년 (1440) 05/19(경신)
일본 통신사(通信使) 서장관(書狀官) 부사직(副司直) 김예몽(金禮蒙)이 돌아오니, 임금이 인견(引見)하고, 일본 산천의 험하고 평탄한 것과 궁실의 제도와 접대의 후하고 박한 것을 물었다. 예조(禮曹)에 전지하기를, “각도 각 고을에 있는 사사(寺社)의 비명(碑銘)은, 혹은 고사(故事)를 상고하기도 하고 혹은 필적을 보기도 하여 후일의 소용이 되는데, 듣건대, 각 고을에서 혹 깨어서 그릇을 만들어 그 자취를 멸하는 일이 있다고 하니, 이제부터는 각도에 이문(移文)하여 파손하지 말게 하라.”하였다【원전】4 집 288 면

세종 24년 (1442) 12/10(병신)
사헌부에서 아뢰기를,“사직(司直) 이계화(李繼和)·김예몽(金禮蒙)·예조 좌랑 박적선(朴積善)·승문원 박사(承文院博士) 장계숙(張季淑)·돈녕부 부승(敦寧府副丞) 홍일동(洪逸童)·사정(司正) 윤자운(尹子雲)이 강례관(講隸官)으로써 여러 해 동안 중국말[漢語]을 강습(講習)했으나, 고의로 마음을 쓰지 않았으므로 조금도 실효(實?)가 없사오니, 죄가 장(杖) 80대에 해당하옵니다.”
  하니, 그대로 따랐다.【원전】 4 집 450 면

세종 27년 (1445) 10/27(무진)
집현전(集賢殿) 부교리(副校理) 김예몽(金禮蒙)·저작랑(著作郞) 유성원(柳誠源)·사직(司直) 민보화(閔普和) 등에게 명하여 여러 방서(方書)를 수집해서 분문류취(分門類聚)하여 합(合)해 한 책을 만들게 하고, 뒤에 또 집현전 직제학(直提學) 김문(金汶)·신석조(辛碩祖), 부교리(副校理) 이예(李芮), 승문원(承文院) 교리(校理) 김수온(金守溫)에게 명하여 의관(醫官) 전순의(全循義)·최윤(崔閏)·김유지(金有智) 등을 모아서 편집하게 하고, 안평 대군(安平大君) 이용(李瑢)과 도승지(都承旨) 이사철(李思哲)·우부승지(右副承旨) 이사순(李師純)·첨지중추원사(僉知中樞院事) 노중례(盧仲禮)로 하여금 감수(監修)하게 하여 3년을 거쳐 완성하였으니, 무릇 3배 65권이었다. 이름을 《의방유취(醫方類聚)》라고 하사하였다.
【원전】 4 집 643 면

세종 29년 (1447) 02/16(무신)
이 앞서 의주 상정관(儀注詳定官)이 사왕(嗣王)의 즉위(卽位)하는 의식을 찬술(撰述)하면서 관복(冠服) 길흉(吉凶)의 제도가 제정되지 않아서 예전 제도를 상고하여 바치기를.........직제학(直提學) 김문(金汶), 부교리(副校理) 김예몽(金禮蒙)·이현로(李賢老), 수찬(修撰) 양성지(梁誠之)·성삼문(成三問), 부수찬(副修撰) 정창(鄭昌)·이예(李芮), 박사(博士) 유성원(柳誠源)·이극감(李克堪)이 아뢰기를.......

세종 30년 (1448) 05/09(계사)
처음 종실(宗室)의 이담(李湛)이 먼저 백씨(白氏)에게 장가들고, 뒤에 이씨(李氏)에게 장가들었는데, 이씨가 죽으매 백씨의 소생인 이효손(李孝孫)이 상(喪)을 입지 않았다. 이씨의 소생인 이성손(李誠孫)이 헌부(憲府)에 고하니, 헌부에서는“병축(쯂畜)의 아내라고 하여 가리켜 아무 어머니라 할 수 없다.”
하여, 예조로 하여금 법을 정하게 하니......집현전 응교 어효첨(魚孝瞻)의 의논도 이와 같고, ........
응교 신숙주(申叔舟), 교리 김예몽(金禮蒙)·하위지(河緯地)......는 의논하기를.........
임금이 계전(季甸)에게 이르기를,
  “효손은 이씨를 위하여 기년상을 입고, 성손은 따로 다른 곳에 이씨를 봉사하고 예조로 하여금 이와 같이 제도를 정하게 하라.”하였다. .......【원전】 5 집 64 면

05/15(기해)
지대구군사(知大丘郡事) 이보흠(李甫欽)에게 유시하기를,
  “네가 아뢴 사창 사의(社倉事宜)는 정부에 내려 의논하니, 모두 말하기를, ‘행하기 어렵다.’ 하고...... 네가 시험하되 그 포치(布置)의 방략은 될 수 있는 대로 천천히 하고 누그러지게 하여 번요(煩擾)하게 하지 말라. 집현전의 의논을 동봉(同封)하니 아울러 참고하라.
  1. 집현전 부제학 정창손(鄭昌孫)...... 교리 김예몽(金禮蒙)......은 말하기를, ‘사창(社倉)의 법은 전현(前賢)이 이미 시험한 것이니, 행하는 것이 적당함을 얻으면 참으로 보흠(甫欽)의 말한 것과 같아서 심히 백성에게 편하지마는, 의논하는 자가 이 법이 비록 실상은 백정을 위하여 베푼 것이나, 이식(利息)을 취한다는 이름이 대체에 누가 될 것 같고, 또 사장(社長)을 다 청렴하고 근실한 사람으로 얻지 못하면 혹은 벼슬을 얻기를 바라고, 혹은 나머지를 훔치려고 엿보아 이자를 취하기에 힘써, 거두어 들이는 것이 중도에 지날 것입니다........【원전】 5 집 68 면

세종 31년 (1449) 02/05(병진)
춘추관에서 《고려사(高麗史)》를 고쳐 편찬하기를 논의하였는데, 의논이 일치하지 아니하였다. 사관(史官) 신석조(辛碩祖)·최항(崔恒)·박팽년(朴彭年)·이석형(李石亨)·김예몽(金禮蒙)·하위지(河緯地)·양성지(梁誠之)·유성원(柳誠源)·이효장(李孝長)·이문형(李文炯) 등은 의논하기를,
  “사기(史記)를 짓는 체(體)는 반드시 기(紀)·전(傳)·표(表)·지(志) 등이 있어서, 사적(事跡)을 갖추 실어 각각 조리가 관통(貫通)됨이 있어야 하니, 사마천(司馬遷)·반고(班固) 이후로 모두 이 체를 이어받아서, 고치는 이가 없고, 편년법(編年法)은 본사(本史)를 은괄(?括)하여 보기 편리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  【원전】 5 집 117 면

세종 32년 (1450) 01/22(무술)
부윤(府尹) 박연(朴堧)·응교(應敎) 김예몽(金禮蒙)·수찬(修撰) 유성원(柳誠源)을 불러 내약방(內藥房)에서 의학에 관한 서적을 7일간 상고하여 보게 하였다.【원전】 5 집 161 면

문종 즉위년 (1450) 07/06(무신)
이채(李?)를 흥록 대부(興祿大夫) 의성군(誼城君)으로........ 이석형(李石亨)·김예몽(金禮蒙)을 필선(弼善)으로 삼고......  【원전】 6 집 250 면

09/07(무신)
공조 판서(工曹判書) 정인지(鄭麟趾)가 문과(文科)의 가액(加額)과 시험보아 뽑는 절목(節目)을 아뢰니...........집현전 부제학(集賢殿副提學) 신석조(辛碩祖).........응교(應敎) 김예몽(金禮蒙), ..........등은 의논하기를,“과목(科目)의 정원[額]은 고려(高麗)에서부터 시작하여 시행된 지가 이미 오래되었으니.......【원전】 6 집 279 면

09/17(무오)
왕세자(王世子)가 비로소 서연(書筵)을 열어 사부(師傅)·빈객(賓客)과 더불어 상회례(相會禮)를 행하고
..........좌필선(左弼善) 이석형(李石亨)·우필선(右弼善) 김예몽(金禮蒙)·........등이 앞에 나아가 《소학(小學)》을 강론(講論)하였다.......이에 노숙동·김예몽·유성원·이극감을 의망(擬望)하여 아뢰므로, 임금이 마침내 유성원과 이극감으로 결정을 하게 되었다.......... 【원전】 6 집 282 면

문종 2년 (1452) 02/20(갑신)
감춘추관사(監春秋館事) 김종서(金宗瑞) 등이 새로 찬술(撰述)한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를 바쳤으니..........노숙동(盧叔仝)·이석형(李石亨)·김예몽(金禮蒙)·이예(李芮)·윤기견(尹起죻)·윤자운(尹子雲) 등으로 하여금 기(紀)·지(志)·연표(年表)를 나누어 찬술(撰述)하도록 하고는........  【원전】 6 집 467 면

05/14(병오)
임금의 병환이 위급하니, 직집현(直集賢) 김예몽(金禮蒙) 등이 내의(內醫)와 더불어 사정전(思政殿)의 남랑(南廊)에서 방서(方書)를 상고하고, 수양 대군(首陽大君) 이하의 여러 종친(宗親)이 모두 있었다
【원전】 6 집 491 면

단종 즉위년 (1452) 11/05(계해)
앞서 이숙번(李叔蕃)의 처 정씨(鄭氏)가 상언(上言)하기를......... 하고, 부제학(副提學) 최항(崔恒)·직제학(直提學) 박팽년(朴彭年)·직전(直殿) 김예몽(金禮蒙)·..... 등이 의논하여 말하기를,
  “남편이 이미 그 아내와 더불어 가산(家産)을 함께 나누어 자손에게 주었다면 그 아내는 남편이 죽은 뒤에 변경할 수 없습니다........ 【원전】 6 집 551 면

단종 1년 (1453) 05/04(경신)
정양(鄭穰)을 사간원 좌사간(司諫院左司諫)으로, ............김예몽(金禮蒙)을 사헌 집의(司憲執義)로.....  【원전】 6 집 586 면

07/15(경오)
이보다 앞서 김종서의 첩이 시좌소(時坐所)의 내문(內門)에 함부로 들어왔고, 또 김종서는 김윤부(金允富)의 말을 취하였다. 사헌부가 탄핵하려고 하니.......이때부터 김종서는 경연(經筵)에서 매양 아뢰기를,
  “옛사람이 말하기를, ‘정사가 대각(臺閣)에 돌아가면 천하가 어지럽다.’ 하였습니다. 청컨대 상감께서는 신진(新進) 대간(臺諫)의 고담준론(高談峻論)을 듣지 마소서.”하니, 어느 날 허후(許?)가 또한
집의(執義) 김예몽(金禮蒙)을 보고 말하기를,“그대가 법을 맡았는데, 무릇 일을 어찌 시세(時勢)를 보지 않고 하는가?”하였다.【원전】 6 집 606 면

07/16(신미)
사간원(司諫院)에서 전옥서(典獄署) 및 사헌부(司憲府)와 형조(刑曹)의 관리를 국문(鞫問)하고 조율(照律)하여 아뢰기를.......유규(柳規)와 집의(執義) 김예몽(金禮蒙)과 참의(參議) 정효강(鄭孝康) 등은 또한 규거(糾擧)하지 아니하였으니, 청컨대 모두 조율(照律)하여 논죄(論罪)하소서 ....【원전】 6 집 606 면


단종 3년 (1455) 05/03
이석형(李石亨)을 첨지중추원사(僉知中樞院事)로, 김예몽(金禮蒙)을 집현전 부제학(集賢殿副提學)으로...【원전】 7 집 38 면

세조 1년 (1455) 06/11(을묘)
.......의정부(議政府)에서 집현전 부제학(集賢殿副提學) 김예몽(金禮蒙) 등으로 하여금 선위(禪位)·즉위(卽位)의 교서(敎書)를 짓도록 하고 유사(有司)가 의위(儀衛)를 갖추어 헌가(軒架)를 근정전(勤政殿) 뜰에 설치하였다.........【원전】 7 집 59 면

07/04(정축)
영의정(領議政) 정인지(鄭麟趾)에게는 안장(鞍粧) 갖춘 말을........부제학(副提學) 김예몽(金禮蒙)·판통례문사(判通禮門事) 김가(金?)에게는 표리(表裏) 각각 1필(匹)을 하사하고........【원전】 7 집 76 면

08/05(무신)
병조 판서(兵曹判書) 이계전(李季甸), ......집현전 부제학(集賢殿副提學) 김예몽(金禮蒙)·송처관(宋處寬), 직제학(直提學) ...........에게 명하여 관제(官制)를 편찬하게 하였다.【원전】 7 집 84 면

09/02(갑술)
강서관(講書官) 겸 성균관 사성(兼成均館司成) 김구(金鉤)와 시강관(侍講官)인 집현전 부제학(集賢殿副提學) 김예몽(金禮蒙) 등이 강좌(講坐)로 나아가니, 임금이 《하도(河圖)》·《낙서(洛書)》의 강의(講義)를 명하였다........김예몽이 반복(反覆)해서 분석(分析)하여 어려운 것을 밝히니, 임금이 말하기를,“강론(講論)은 그만하면 충분하니, 너희들은 각각 술잔을 들라.”....【원전】 7 집 85 면

09/10(임오)
의정부에 전지(傳旨)하기를,........ 예조 판서(禮曹判書) 김조(金?)·.......부제학(副提學) 김예몽(金禮蒙)......은 2등에 녹(錄)한다.【원전】 7 집 102 면

세조 2년 (1456) 01/25(을미)
예조 판서 김하(金何)·........집현전 부제학(集賢殿副提學) 김예몽(金禮蒙)·송처관(宋處寬) 등이 생원(生員) 민수(閔粹) 등 1백 인과 진사(進士) 박순(朴詢) 등 1백 인을 뽑았다.【원전】 7 집 112 면

세조 3년 (1457) 01/18(계미)        
박중손(朴仲孫)을 의정부 우참찬(議政府右參贊)으로...... 김예몽(金禮蒙)을 호조 참의(戶曹參議)로.......
【원전】 7 집 172 면

세조 6년 (1460) 05/11(병술)
인순부 윤(仁順府尹) 김예몽(金禮蒙)·동지중추원사(同知中樞院事) 홍익성(洪益誠) 등을 보내어 표문(表文)을 받들고 명(明)나라에 가서 채단(綵段)을 하사(下賜)한 것을 사례하고...... 【원전】 7 집 394 면

08/26(기사)
사은사(謝恩使) 김예몽(金禮蒙)이 칙서(勅書)를 가지고 명(明)나라에서 돌아왔는데, ......
또 칙서(勅書)에 이르기를,“지금 왕의 주본(奏本)을 보니 칭(稱)하기를 ‘나라가 해외(海外)에 있어서 문학(文學)이 정(精)하지 못하고, 겸하여 또 이문(吏文) 한음(漢音)을 밝게 통할 수 없으니, 역대(歷代)의 구례(舊例)를 참조(參照)하여 자제(子弟)들을 보내어서 입학(入學)시키고자 합니다.’ 하였는데,......나라 안의 자제(子弟)들을 권려(勸勵)하여 경적(經籍)에 뜻을 독실(篤實)하게 하면, 그들 가운데 스승이 있을 것이다. 인재(人才)가 그 그릇이 이루어지기 어려울까 걱정하지 말고, 사대(事大)에 그 막히는 일이 있을까 걱정하지 말라. 이로써 왕에게 유시(諭示)하니, 짐(朕)의 이러한 뜻을 몸받아서 소홀히 하지 말라.”.........【원전】 7 집 416 면

11/10(임오)
....... 김예몽(金禮蒙)을 사헌부 대사헌(司憲府大司憲)으로.........【원전】 7 집 432 면

11/19(신유)
  이숙감(李淑?)의 아내 김씨(金氏)가 원통함을 호소하기를,
  “이숙감(李淑?)이 김생(金生)을 간통하지 않았는데, 사헌부(司憲府)에서 그릇 형벌하여 항복을 받았습니다.”하였다. 대사헌(大司憲) 김예몽(金禮蒙) 등이 피혐(避嫌)하기를 청하니, 윤허하지 아니하였다. 사헌부(司憲府)에서 아뢰기를,“이숙감이 정상(情狀)이 나타나고 일이 밝혀졌는데도 그 아내로 하여금 상언(上言)하게 하여 도리어 본부(本府)를 허물하였습니다. 청컨대 다른 관사에 옮기어 국문(鞫問)하고 아울러 몽롱하게 상언한 죄를 국문하소서.” 하니, 그대로 따랐다. 【원전】 7 집 436 면

세조 7년 (1461) 07/02(경자)
.........김예몽(金禮蒙)을 겸 성균 사성(兼成均司成)으로.........【원전】 7 집 472 면

08/27(갑오)
교태전(交泰殿)에 나아가 내종친(內宗親) 및 좌의정 신숙주(申叔舟)........송처관(宋處寬)·김예몽(金禮蒙), 예조 참의(禮曹參議) 서거정(徐居正)·첨지중추원사(僉知中樞院事) 임원준(任元濬) 등을 불러 언문(諺文)으로 《명황계감(明皇誡鑑)》을 번역하게 하였다.......【원전】 7 집 482 면

11/22(무오)
겸 성균 사성(兼成均司成) 김예몽(金禮蒙) 등이 전문(箋文)을 올려 술을 내려 준 것을 사례하였는데, 전문(箋文)에 이르기를,
  “바라기는 해와 같고 나아가기는 구름과 같아서 천표(天表)를 사모하여 우러러보며 술로써 취하고, 덕(德)으로써 배불렀습니다. 예은(睿恩)을 우악(優惡)하게 입어 감격함을 이기기 어려우며 황공하여 몸둘 바가 없습니다. 엎드려 생각하건대, 신 등은 두소(斗?)의 천기(淺器)로서 형설(螢雪)의 공을 쌓으면서[螢寒雲켢] 성경(聖經)을 궁탐(窮探)하나, 돌아보건대, 환영(桓榮)의 계고(稽古)에 모자라고, 외람되게 고비(皐比)에 거(居)하여 감히 주왕(周王)의 작인(作人)을 도우나, 항상 시소(尸素)의 허물을 품고 있으니, 어찌 특별한 은총(恩寵)을 바랐겠습니까? 좋은 안주는 난만(爛漫)하여 맛은 여덟 가지 진귀(珍貴)한 음식으로 나눌 수 있고, 신선의 술은 인온(??)하여 향기는 구천(九天)의 못을 넘칠 만하여 학생과 스승이 함께 기뻐하였으니, 금고(今古)에 드문 일이었습니다. 이는 대개 교화(敎化)를 일으키시고 학문(學問)을 높이시며, 어진 사람을 존중하시고 도(道)를 즐기시며, 건곤(乾坤)을 홍조(洪造)하시는 때를 엎드려 만나서, 빌고 털끝만한 것도 남기지 못하였으나, 우로(雨露)의 은혜가 깊고 인자하시어 이에 홀로 광비(狂斐)보다 후하게 하시니, 일이 간책(簡策)에 빛나고, 기쁨이 유림(儒林)에 넘칩니다. 신 등은 삼가 마땅히 청금(靑衿)과 더불어 맹세하고 더욱 소절(素節)을 다하겠으니, 길이 연어(鳶魚)의 화육(化育)에 젖게 하시고, 천지(天地)의 생성(生成)이 성(盛)하기를 우러릅니다.”하였다.【원전】 7 집 498 면

세조 8년 (1462) 10/13(갑술)
홍윤성(洪允成)을 판중추원사(判中樞院事)로...... 김예몽(金禮蒙)을 동지중추원사(同知中樞院事) 겸 성균관 사성(成均館司成)으로..........    【원전】 7 집 553 면


12/07(정묘)
정창손(鄭昌孫)을 봉원 부원군(蓬原府院君)으로...... 김예몽(金禮蒙)을 동지중추원사(同知中樞院事)로......【원전】 7 집 559 면

12/08(무진)
사정전에 나아가서 상참(常參)을 받고, 정사를 보고, 술자리를 베풀었다.....강원도 관찰사 김예몽(金禮蒙)·충청도 관찰사 최한경(崔漢卿) 등이 와서 숙배(肅拜)하니, 모두 인견(引見)하고 .........김예몽·최한경 등에게 백성을 다스리는 대략을 물었다.....【원전】 7 집 559 면

세조 9년 (1463) 11/12(병인)
전지(傳旨)하기를, “강원도 관찰사(江原道觀察使) 김예몽(金禮蒙)이 전일에 천신(薦新)할 마른 대구어(大口漁)를 늦게 바쳐서 이미 못쓰게 되었다. 지금 산 송어(松魚)를 바쳤는데, 송어는 바로 2월 월령(月令)에 천신(薦新)하는 물건이니, 1년 안에 어찌 두 번이나 이런 물건을 천신하겠는가? 그가 혼매(昏昧)한 것이 심하다. 이것은 특히 음식(飮食)에 관한 일이지만, 그러나 한 가지 일을 보면 그 사람의 됨됨이를 알 수가 있다. 김예몽이 강원도에 임명을 받은 이래로 무슨 아름다운 업적이 있었는가? 금년에 영동(嶺東)에는 연사(年事)가 또 흉년이 심하게 들었으니, 정원(政院)에서는 이러한 뜻을 자세히 알라.”하였다.【원전】 7 집 594 면

세조 11년 (1465) 01/27(을해)
고시관(考試官) 송처관(宋處寬)·김예몽(金禮蒙) 등이 진사(進士) 정지(鄭摯) 등 1백 인과 생원(生員) 이창신(李昌臣) 등 1백 인을 취하여 아뢰니, 전교하기를,“오늘 새로운 생원(生員)·진사(進士)를 인견(引見)하려고 하니, 그 모든 일을 속히 차비(差備)하라.”하였다【원전】 7 집 669 면

05/15(신유)
임금이 비현합(丕顯閤)에 나아가니, 좌의정 구치관(具致寬)........행 상호군(行上護軍) 김예몽(金禮蒙)·병조 참판 송문림(宋文琳)이 입시(入侍)하여, 어제(御製)한 병법 대지(兵法大旨)로써 글을 강(講)하고.............임금이 보고 나서 전교하기를,“너희들 무신(武臣)이 이와 같이 글을 이룰 줄은 뜻하지 못하였다. 이제 지은 것을 보니, 마음으로 심히 가상히 여긴다.”하고, 각각 활[弓] 1장(張)씩을 내려 주었다.
【원전】 7 집 685 면

06/01(정축)
충순당(忠順堂)에 나아가니, 임영 대군(臨瀛大君) 이구(李?)·........행 상호군(行上護軍) 김예몽(金禮蒙), 승지(承旨) 등이 입시(入侍)하였다. 성균 생원(成均生員) 남주(南輳) 등 10인이 경서(經書)를 강(講)하고, 또 겸사복(兼司僕)·내금위(內禁衛)로 하여금 좌우(左右)로 나누어 사후(射候)하게 하여 우등(優等)한 자에게는 말 1필을 내려 주고, 그 나머지는 도롱이[蓑衣]를 내려 주며, 이기지 못한 자는 명하여 벌연(罰宴)을 행하게 하였다.【원전】 7 집 688 면

07/01(병오)
임금이 연복(燕服) 차림으로 비현합(丕顯閤)에 나아가 세자(世子)와 효령 대군(孝寧大君) 이보(李補)......·행 상호군(行上護軍) 김예몽(金禮蒙), 승지(承旨) 등을 불러서 유생(儒生)에게 경서(經書)를 강(講)하게 하고, 또 유생(儒生)과 겸예문(兼藝文)으로 하여금 합전송(合戰頌)을 논(論)하게 하였다......
【원전】 7 집 692 면


10/01(을해)
비현합(丕顯閤)에 나아가니, 왕세자(王世子)와 효령 대군(孝寧大君) 이보(李補)·......행 상호군(行上護軍) 김예몽(金禮蒙)·이조 참판(吏曹參判) 강희맹(姜希孟) 등이 입시하였다. .......세자에게 명하여 책을 잡고 강하게 하며 너그러이 말하기를,“예전 사람이 말하기를, ‘깨우치는 것도 배움의 반이다.’ 하였다. 남에게서 강문(講問)하는 것이 유익하니, 네가 물으라.”하였다. 또 겸예문 유신(兼藝文儒臣)을 불러 《주역(周易)》을 강하게 하였다.【원전】 7 집 706 면

10/15(기축)
비현합(丕顯閤)에 나아가니, 효령 대군(孝寧大君) 이보(李補)·...행 상호군(行上護軍) 김예몽(金禮蒙)·한성부 윤(漢城府尹) 이파(李坡)가 입시하여 술자리를 베풀었다. 술이 수차 돌자 명하여 겸예문(兼藝文) 정난종(鄭蘭宗) 등을 부르고, 인하여 여러 종친과 재추에게 이르기를,이 사람들은 모두 재주있는 선비이다...【원전】 7 집 708 면

11/01(을사)
비현합(丕顯閤)에 나아가니, 효령 대군(孝寧大君) 이보(李補)·....행 상호군 김예몽(金禮蒙)·.......이 입시하여 술자리를 베풀고, 성균 유생에게 경서(經書)를 강하게 하였다. 또 겸예문(兼藝文) 정난종(鄭蘭宗) 등을 불러 《주역구결》을 강하게 하였다.【원전】 7 집 710 면

11/25(기사)
비현합(丕顯閤)에 나아가니, 의정부(議政府)·육조(六曹)에서 풍정(?呈)을 올리고 왕세자(王世子) 이하가 뜰에 들어와 사배(四拜)하였다......왕세자는 뜰 위 동쪽에 앉고, 효령 대군 이보(李補)는 뜰 위 서쪽에 앉고........행 상호군 김예몽(金禮蒙)·..... 등은 뜰 동쪽에 앉고, 기생·공인 및 내녀(內女) 3인은 동랑(東廊)에서 풍악을 연주하였다. 【원전】 7 집 714 면

세조 12년 (1466) 02/01(계유)
근정전(勤政殿)에 나아가서 조하(朝賀)를 받고, 드디어 충순당(忠順堂)에 들어가서 영의정(領議政) 신숙주(申叔舟)........·행 상호군(行上護軍) 김예몽(金禮蒙)......여러 장수들과 승지들을 불러 술자리를 베풀고 활 쏘는 것을 구경하였다.【원전】 8 집 5 면

02/12(갑신)
.........행 상호군(行上護軍) 송처관(宋處寬)·김예몽(金禮蒙), 중추부 지사(中樞府知事) 김국광(金國光)·......·중추부 동지사(中樞芬知事) 서거정(徐居正)을 불러 행학의(幸學儀)를 의논해 정하였는데...........【원전】 8 집 7 면

02/23(을미)
충순당(忠順堂)에 나아가서 효령 대군(孝寧大君) 이보(李補).......행 상호군 김예몽(金禮蒙).......
승지(承旨)들을 불러 술자리를 베풀고 활쏘기를 구경하였다.【원전】 8 집 8 면

03/01(임인)
사정전(思政殿)에 나아가 하동군(河東君) 정인지(鄭麟趾)·.......행 상호군(行上護軍) 김예몽(金禮蒙)·......
승지들을 불러 유생(儒生) 김중연(金仲演) 등 7인에게 경서(經書)를 강(講)하게 하고..【원전 8 집 9 면

03/05(병오)
성균관(成均館)에 거둥하였다......행 상호군(行上護軍) 송처관(宋處寬)·김예몽(金禮蒙)..... 임금이 문선왕(文宣王)에게 알묘(謁廟)하기를 의식과 같이 하고, 친히 정한 《주역구결(周易口訣)》을 반포(頒布)하였다. 【원전】 8 집 9 면

04/15(을묘)
서현정(序賢亭)에 나아가서 유생(儒生)을 인견(引見)하고 경서(經書)를 강(講)하게 하였다. 좌의정 구치관(具致寬)·..........행 상호군(行上護軍) 김예몽(金禮蒙)...등이 입시(入侍)하여 술자리를 베풀고, 종친(宗親)·재신(宰臣)에게 명하여 차례로 술을 올리게 하였다.【원전】 8 집 17 면

05/01(신미)
임금이 근정전(勤政殿)에 나아가서 조하(朝賀)를 받은 후 들어와 사정전(思政殿)에 나아가서 유생(儒生) 10인에게 경서(經書)를 강(講)하게 했는데.........행 상호군(行上護軍) 김예몽(金禮蒙)·중추부 동지사(中樞芬知事) 서거정(徐居正).... 등과 더불어 입시(入侍)하였다. 【원전】 8 집 21 면

06/22(신유)
김질(金?)을 의정부 우참찬(議政府右參贊)으로........김예몽(金禮蒙)을 행 성균관 대사성(行成均館大司成)으로 삼았다. 【원전】 8 집 28 면

06/23(임술)
인산군(仁山君) 홍윤성(洪允成)이 홍산(鴻山)으로부터 와서 임금을 알현(謁見)하니, 임금이 강녕전(康寧殿)에 나아가서 인견하고 술자리를 베풀어 이를 위로하고는........대사성(大司成) 김예몽(金禮蒙) 등과 여러 종친(宗親)·재추(宰樞)를 불러서 차례대로 술잔을 올리게 하였다.【원전】 8 집 28 면

07/01(경오)
임금이 강녕전(康寧殿)에 나아가니, 하동군(河東君) 정인지(鄭麟趾)·.......행 대사성(行大司成) 김예몽(金禮蒙)·.......등이 입시(入侍)하였다. 유생(儒生) 김온(金溫) 등 8인에게 경서(經書)를 강(講)하게 하고....【원전】 8 집 28 면

07/24(계사)
임금이 강녕전(康寧殿)에 나아가서 하동군(河東君) 정인지(鄭麟趾)·.......대사성(大司成) 김예몽(金禮蒙) 등을 불러 대독관(對讀官)으로 삼아 어제 지은 글을 고열(考閱)하도록 하고, 임금이 친히 임(臨)하여 과거(科擧)의 차례를 매기는데, 중추부 판사(中樞府判事) 김수온(金守溫) 등 12인을 뽑아서 명칭을 등준시(登俊試)라 하였다.【원전】 8 집 34 면

07/26(을미)
등준시(登俊試)의 은영연(恩榮宴)을 의정부(議政府)에서 하사(下賜)하였다. 임금이 도승지(都承旨) 신면(申?)에게 명하여 선온(宣춠)을 가지고 가서 홍패(紅牌)와 안마(鞍馬) 등의 물건을 하사(下賜)하고.....
행 대사성(行大司成) 김예몽(金禮蒙) 등에게 명하여 가서 잔치에 참여하도록 하였다.【원전】8 집 34 면

09/15(계미)
임금이 강녕전(康寧殿)에 나아가니, 왕세자(王世子)가 효령 대군(孝寧大君) 이보(李補)·......대사성(大司成) 김예몽(金禮蒙)·승지(承旨) 등과 더불어 입시(入侍)하였다. 유생(儒生)에게 경서(經書)를 강(講)하게 하니, 겸 예문관군자감주부(兼藝文館軍資監主簿) 조숙(趙淑)이 《시경(詩經)》을 강(講)하면서 음훈(音訓)을 분변하지 못하므로, 임금이 웃으셨다........ 【원전】 8 집 40 면

09/30(무술)
종친(宗親)과 의정부(議政府)·육조(六曹)·충훈부(忠勳府)·중추부(中樞府)의 당상관(堂上官)이 임금께 문안(問安)하니.......대사성(大司成) 김예몽(金禮蒙)·한성부 윤(漢城府尹) 이서(李墅)·이조 참판 신승선(愼承善)·병조 참판 박중선(朴仲善)과 여러 장수들을 불러 궐내(闕內)에 들어와서 술을 접대하게 하였다.....
【원전】 8 집 41 면

10/19(정사)
한명회(韓明澮)를 영의정으로........김예몽(金禮蒙)을 성균관 대사성(成均館大司成)으로........
【원전】 8 집 44 면

10/20(무오)
영의정 한명회(韓明澮)·........대사성(大司成) 김예몽(金禮蒙) 등이 사은(謝恩)하니, 임금이 인견하고 술을 접대하였다.【원전】 8 집 44 면

11/02(경오)
하동군(河東君) 정인지(鄭麟趾)·........행 대사성(行大司成) 김예몽(金禮蒙)·.....을 불러서 생원(生員) 유척(兪陟) 등 6인에게 경서(經書)를 강(講)하도록 하고....【원전】 8 집 45 면


세조 13년 (1467) 10/03(을미)
하동군(河東君) 정인지(鄭麟趾)·.....중추부 지사(中樞府知事) 황치신(黃致身)·김예몽(金禮蒙), .......
에게 명하여 날마다 돌아가며 태평관에 나가서 잔치를 베풀게 하였다. .......【원전】 8 집 128 면

10/14(병오)
이합(李?)을 보성군(寶城君)으로.......김예몽(金禮蒙)을 행 대사성(行大司成)으로...【원전】 8 집 131 면

12/01(계사)
임금이 편전(便殿)에 나아가서, 하동군(河東君) 정인지(鄭麟趾)·......성균 대사성(成均大司成) 김예몽(金禮蒙).....에게 명하여 《시경(詩經)》의 구결(口訣)을 교정(校正)하게 하고....  【원전】 8 집 148 면

12/02(갑오)
중추부 첨지사(中樞府僉知事) 정자영(鄭自英)·행 상호군(行上護軍) 구종직(丘從直)·성균관 대사성(成均館大司成) 김예몽(金禮蒙)을 불러서 《시경(詩經)》·《서경(書經)》의 구결(口訣)을 교정(校正)하게 하였다.【원전】 8 집 148 면

12/12(갑진)
임금이 중궁(中宮)과 더불어 선정전(宣政殿)에 나아가서, 효령 대군(孝寧大君) 이보(李補)와 부인(夫人)을 불러서 위로하는 잔치를 베풀고,......성균 대사성(成均大司成) 김예몽(金禮蒙)·행 호군(行護軍) 이파(李坡)...... 등을 불러서 시연(侍宴)하게 하였다. ..... 【원전】 8 집 150 면

12/13(을사)
보경당(寶慶堂)에 나아가서 중추부 첨지사(中樞府僉知事) 구종직(丘從直)·성균 대사성(成均大司成) 김예몽(金禮蒙)·공조 참판(工曹參判) 정자영(鄭自英) 등을 불러서 《시경(詩經)》의 구결(口訣)을 교정(校正)하게 하고....【원전】 8 집 150 면


12/14(병오)
영성군(寧城君) 최항(崔恒),좌찬성(左贊成) 김국광(金國光).....성균 대사성(成均大司成) 김예몽(金禮蒙)·
등을 내전(內殿)에 불러서 시식(侍食)하도록 하였다........임금이 김예몽·구종직·정자영 등에게 이르기를,  “너희들이 교정(校正)한 《시경(詩經)》의 구결(口訣)을 가지고 오라.”하니, 김예몽 등이 바치므로, 임금이 친히 읽어 보고 내용을 검토하였다.....【원전】 8 집 150 면

세조 14년 (1468) 01/27(무자)
밀성군(密城君) 이침(李琛)에게 명하여 유도장(留都將)·유도상(留都相)의 공사(公事)를 겸하여 맡아 보게 하였다.....행 대사성(行大司成) 김예몽(金禮蒙)을 유도상(留都相)으로 삼고.......【원전】 8 집 158 면

05/27(병술)
크게 천둥이 치고 비가 왔다. 환관(宦官) 백충신(白忠信)이 금중(禁中)에서 벼락을 맞으니 임금이 사정전(思政殿)에 나아가 고령군(高靈君) 신숙주(申叔舟)·......대사성(大司成) 김예몽(金禮蒙)과 승지(承旨) 등을 불러 이르기를....  “이제 하늘의 꾸짖음이 이와 같으니, 마땅히 피거(避居)하여 스스로 경계하여야겠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한여름에 거처할 만한 곳이 없으니, 다만 마땅히 용서할 구언(求言)을 내어서 스스로 책망할 뿐이다.”하고......【원전】 8 집 188 면


07/12(기사)
하동군(河東君) 정인지(鄭麟趾)·...대사성(大司成) 김예몽(金禮蒙)·.........성균관(成均館)·예문관(藝文館)·춘추관(春秋館)·홍문관(弘文館)·시강원(侍講院)의 여러 문신(文臣)을 불러 사정전(思政殿) 월랑(月廊)에 모이게 하고,.......  【원전】 8 집 202 면

08/05(임진) 안효례와 최효원이 정자영과 더불어 《어정주역구결》에 대해 서로 논란하다
임금이 정인지(鄭麟趾).....김예몽(金禮蒙)·....등을 불러 좌우로 나누어 《어정주역구결(御定周易口訣)》을 의논케 하였다......  【원전】 8 집 205 면

08/10(정유)
임금이 여러 재추(宰樞)와 이영은(李永垠)·.........김예몽(金禮蒙)·....최호원(崔灝元) 등을 불러 술자리를 베풀고 《어정주역구결(御定周易口訣)》을 의논하게 하였더니.....【원전】 8 집 206 면

08/12(기해)
임금이 불예(不豫)하여 하동군(河東君) 정인지(鄭麟趾)·...중추부 지사(中樞府知事) 한계희(韓繼禧)와 승지(承旨) 등이 문안(問安)하였는데, 불러들이어 술자리를 베풀었다.......또 구종직(丘從直)·김예몽(金禮蒙)·.......안효례(安孝禮)를 불러 《주역(周易)》의 이치를 논란(論難)하게 하니, 구종직과 정자영이 각각 소견(所見)을 고집하며 다투어 논란(論難)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최호원·안효례 등도 또한 각각 스스로를 고집하며 잡되게 회해(?諧)하더니 인하여 성을 내며 갖은 말을 다하여 서로 꾸짖으니, 시좌(侍坐)한 신하들이 모두 가리키며 웃었다. 조금 있다가 여러 신하들을 모두 나가도록 명(命)하고, 오직 구종직 등만 머물게 하여 강론(講論)하게 하였다. 영순군(永順君) 이부(李溥)에게 명하여 전지(傳旨)하기를,
  “구종직은 초자(超資)하여 벼슬을 올려 주고 김예몽은 가자(加資)하여 벼슬을 올려주고,.......
【원전】 8 집 206 면

08/13(경자)
오백창(吳伯昌)을 예조 참판(禮曹參判)으로 삼고......김예몽(金禮蒙)에게 정헌 대부(正憲大夫)를 더하여 주고....... 【원전】 8 집 206 면

08/23(경술)
윤자운(尹子雲)을 팔도 군적사(八道軍籍使)로, 남이(南怡)를 병조 판서(兵曹判書)로, 김예몽(金禮蒙)을 공조 판서(工曹判書)로,........

예종 즉위년 (1468) 10/01(정해)
밀성군(密城君) 이침(李琛)·...... 공조 판서 김예몽(金禮蒙)·........승지(承旨)들을 불러 여차(廬次)에 들어 오게 하였다. 도승지 권감(權?)으로 하여금 상지관(相地官)을 하나하나 불러서 묻기를,
  “너희들이 어제 본 정흠지(鄭欽之)의 묘자리에서 그 산세(山勢)의 길흉(吉凶)을 숨김없이 다 아뢰라.”
........또 종친과 재추들에게 말하기를,“오늘 경들을 인견(引見)한 것은 품은 뜻을 진술하게 하려고 한 것이니, 각각 모두 말하라.”하니, 어효첨·김예몽이 대답하기를,“신 등도 이 산이 매우 아름답다고 들었습니다. 작은 언덕을 없애지 아니하는 것이 도리어 좋은지를 어찌 알겠습니까?”하니.........
【원전】 8 집 279 면

12/23(기유)
국장 도감(國葬都監) 제조(提調) 신숙주(申叔舟)·......장생전(長生殿) 제조(提調) 김예몽(金禮蒙)·오백창(吳伯昌)에게 아마(兒馬)를 각각 1필(匹)씩 내려 주었다.【원전】 8 집 315 면

12/28(갑인)
하동군(河東君) 정인지(鄭麟趾)·.....공조 판서(工曹判書) 김예몽(金禮蒙)·이조 판서(吏曹判書) 성임(成任)·한성부 윤(漢城府尹) 서거정(徐居正)을 불러서 천릉 도감(遷陵都監) 제조(提調)로 삼고, 여러 가지 일을 나누어 맡게 하였다. 임원준·강희맹·김예몽·성임에게 영악(靈幄)을 맡아 보게 하고.

【원전】 8집 306 면

예종 1년 (1469) 01/24(기묘)
귀후서 제조(歸厚署提調) 이영은(李永垠)이 아뢰기를,
  “본서(本署)의 목공(木工)으로 장생전(長生殿)에서 사역(使役)하는 자들을 이미 일찍이 제하(除下)하여 주셨는데, 지금에 이르도록 <장생전에서> 임의로 머물러 두고 돌려보내지 않으니........장생전 제조 김예몽(金禮蒙)과 김길통(金吉通)·이승소(李承召) 등이 와서 아뢰기를,“신 등이 계하하신 일을 마음대로 머물러 둔 것이 아니라, 다만 천릉(遷陵)의 날짜가 박두하고 재궁(梓宮)의 일이 급하여, 제때에 미치지 못할 듯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원전】 8 집 320 면

02/10(을축)
홍윤성(洪允成)을 의정부 좌의정(議政府左議政)으로......김예몽(金禮蒙)·성임(成任)을 중추부 동지사(中樞芬知事)로........【원전】 8 집 338 면

05/21(갑진)
김예몽(金禮蒙)을 겸 성균관 지사(兼成均館知事)로......... 【원전】 8 집 370 면

06/05(정사)
임금이 경회루 아래에 나아가 정사를 보았다......중추부 동지사 김예몽(金禮蒙)·.....등을 사정전(思政殿) 월랑(月廊)에 모이게 하고, 궐내(闕內)의 문사(文士)와 제장(諸將)·선전관(宣傳官)·유생(儒生)들로서 전강(殿講)에 나온 자들을 전문(殿門) 안의 남랑(南廊)에 모아서 모두 제술하게 하고, 이어서 김수온·김예몽·........에게 명하여 제술하게 하고, 한명회 등에게 궁온(宮?)을 내려 주었다........

09/18(무술)
중추부 동지사(中樞芬知事) 김예몽(金禮蒙)이 병 때문에 사직하였다. 김예몽은 젊어서 과거에 급제하였고, 문사(文辭)에 풍치가 있고 아담하여 오랫동안 성균관(成均館)을 맡아서 학자의 모범이 되었는데, 나이가 많아지고 지위가 높아지면서부터 병도 찾아왔으므로, 충주(忠州)에 별서(別墅)를 짓고 거기에서 일생을 마치려는 뜻이 있어 병으로 사직하고 돌아갔다.【원전】 8 집 417 면

[동문선 제10권 차 이천 객사 운(次伊川客舍韻) 김예몽(金禮蒙)]

도끼를 짚었다(대장이 된 것)고 사람들이 다투어 하례하는데 / 杖鉞人爭賀
민풍을 살피니 나 홀로 상심하네 / 觀風我獨傷
재주에 월계가 남는다면 / 才如餘月計
정사는 가히 흉년을 구할 수도 있으련만 / 政可救年荒
스스로 내가 좋은 계책이 없음이요 / 自是吾無策
법이 좋지 못함은 아니네 / 非緣法不良
시를 듣고 도리어 부끄러워하노니 / 聞詩還有愧
소남의 감당을 읊지나 말게 / 休?召南棠


[동문선 제17권 차 양양루 운(次襄陽樓韻) 김예몽(金禮蒙)]

천하를 맑히기야 범공보다 앞서기 바라랴만 / 澄淸敢望范公前
구경 다니기는 한창 때처럼 하는구나 / 遊賞猶能及壯年
그림자는 현산길에 달을 쫓고 / 影逐峴山官道月
꿈은 서울 어로의 연기를 따르네 / 夢尋華岳御爐煙
성은이 깊으신데 갚을 턱 바이 없고 / 恩深欲報嗟無地
짐 무거워 난감하니 하늘이 부끄럽네 / 任重難堪愧有天
좋은 경개 만나면 흥만은 넘쳐서 / 佳境逢來饒逸興
미친 흥이 마치 광천물을 마신 듯하여라 / 興狂還似飮狂泉

[신증동국여지승람 제14권 충주목(忠州牧) 총묘]
이극감(李克堪) 묘ㆍ손순효(孫舜孝) 묘ㆍ김예몽(金禮蒙) 묘 모두 주 북쪽 30리에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제19권 홍주목(洪州牧) 명환]
본조 안등(安騰)ㆍ신유정(辛有定)ㆍ유사눌(柳思訥)ㆍ전흥(田興)ㆍ김예몽(金禮蒙)ㆍ정자제(鄭自濟) 모두 본주 목사가 되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제35권 광산현(光山縣) 인물]
김예몽(金禮蒙)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이 판서(判書)에 이르렀다. 시호는 문경(文敬)이며, 문명(文名)이 있었다. 아들 김덕원(金德源)과 김성원(金性源)도 모두 과거에 급제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제46권 원주목(原州牧) 누정 청허루(淸虛樓)]
김예몽(金禮蒙)의 시에, “달은 맑은 그림자를 나누어서 누(樓)의 모서리에 걸렸고, 바람은 저녁 때의 서늘함을 도와서 물 위에서 온다.” 하였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제47권 평강현(平康縣) 제영]
김예몽(金禮蒙)의 시에, “말을 급히 달려 황야를 지나는데, 숲 사이에서 흰 연기가 난다. 쑥을 엮고 나뭇가지로 얽은 문에 잔약한 민호가 남았고, 띠풀과 납가새풀 사이에 작은 성이 있구나.” 하였다.

[연려실기술 제4권 단종조 고사본말(端宗朝故事本末) 육신(六臣)의 상왕 복위 모의(上王復位謀議)]
그때, 단종이 환관전균(田鈞)을 시켜 우의정 한확(韓確) 등에게 전교하기를, “내가 어려서 안팎의 일을 알지 못하여, 간악한 무리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생겨 반란의 싹이 끊임없이 일어나니, 이제 장차 대임(大任)을 영의정에게 전하려 하노라.” 하였다.....정부는 집현전 부제학김례몽(金禮蒙) 등으로 하여금 선위ㆍ즉위하는 교서를 봉하게 하고........

[연려실기술 제5권 세조조 고사본말(世祖朝故事本末) 세조의 찬술(纂述)]
임금이 일찍이 동방 학자들의 성조가 바르지 못하고 구두가 분명하지 못하여 정몽주(鄭夢周)ㆍ권근(權近) 등의 구결(口訣)이 있으나 아직도 오류가 많아서 썩은 선비와 속된 사대부들이 잘못을 그대로 이어받을까 걱정하여 드디어 노사(老師)숙유(宿儒)인 정인지ㆍ신숙주ㆍ구종직(丘從直)ㆍ김례몽(金禮蒙)ㆍ한계희(韓繼禧)ㆍ최항(崔恒)ㆍ서거정(徐居正) 등에게 명하여 사서(四書)ㆍ오경(五經)을 나누어 주어서 책과 현재의 책에 있는 견해를 고증하여 구결(口訣)을 임금이 친히 재량을 더하였었다

[연려실기술 별집 제5권 사대전고(事大典故) 조사(詔使)]
사신(使臣)김예몽(金禮蒙)이 돌아올 때에 자제(子弟)들의 입학을 허락하지 않는 칙명을 가지고 왔다

[연려실기술 별집 제5권 사대전고(事大典故) 사신(使臣)]
세조 을유년(1465)에 황수신(黃守身)ㆍ김예몽(金禮蒙) 등을 중국에 보냈다

[연려실기술 별집 제9권 관직전고(官職典故) 과거 Ⅰ]
세조 을유년에 사신 김예몽(金禮蒙)이 돌아올 때, 칙유(勅諭)를 가지고 왔는데, 그 칙유에 “이제 왕의 주문(奏文)을 받아보고, 나라가 해외에 있어서 문학이 정(精)하지 못하고, 이문(吏文)과 한음(漢音 중국 음운(音韻))에 밝지 못하므로 역대의 전례에 따라 자제를 보내어 입학시키고 싶다고 한 것은 잘 알았다. 전대(前代)의 제도에 혹 8 재자(才子)를 보내어 가서 가르치게 하거나, 혹은 자제를 파견하여 입학하는 것을 허락하였으나, 왕림(王琳) 등이 과거에 합격하고 돌아간 것이라든가 한방(韓昉)의 무리가 일이 있어 잠깐 머무른 것 같은 예는 대개 전에는 그곳의 문학이 성하지 못하였고, 또 중국의 과장(誇張)하기를 좋아하는 임금들이 그것을 가지고 미관(美觀)을 삼으려는 것뿐이었다. 우리 조정에서는 조종조 이래로 이런 제도를 시행하지 않았고, 더욱이 지금 왕의 나라는 시(詩)ㆍ서(書)ㆍ예의(禮儀)의 교(敎)를 익혀 온 전통이 있어서, 표(表)ㆍ전(箋)ㆍ장주(章奏)와 이첩[行移]하는 이문(吏文)이 모두 예식(禮式)에 맞는다. 그래서 비록 한음(漢音)에 다 통하지 못하더라도 통사(通事)가 번역하여 알지 못할 것이 없으니, 하필 자제들이 와서 배운 후에야 틀림이 없게 되랴. 짐(朕)은 조종의 제도를 따르고 헛된 미관을 본뜨고 싶지 않으니, 왕도 역시 각별히 옛 법을 지켜서 나라 안의 자제를 통솔하여 교육시켜 경적(經籍)에 뜻을 돈독히 하면 저절로 여사(餘師)가 있어 인재를 성취하기에 어려울 염려도 없고, 사대(事大)하는 데 장애가 있을 걱정도 없으리라.” 하였다. 《패관잡기》

[연려실기술 별집 제9권 관직전고(官職典故) 과거 Ⅲ 등과 총목(登科摠目)]
세조 14년 무자 봄 식년시에서 이인형(李仁亨) 등 33명을 뽑았다. 강경(講經)을 면제하였다.
○ 시관 : 영순군(永順君) 보(溥)ㆍ판중추(判中樞) 정창손(鄭昌孫)ㆍ신숙주ㆍ김수온ㆍ지중추(知中樞)어효첨(魚孝瞻)ㆍ홍응(洪應)ㆍ송처관(宋處寬)ㆍ서거정(徐居正)ㆍ이석형(李石亨)ㆍ대사성 김예몽(金禮蒙)ㆍ참의(?議) 신후갑(愼後甲)ㆍ대간 상□(尙□)ㆍ승지(承旨)이극증(李克增)

[청파극담(靑坡劇談)]
집현전(集賢殿)이 성할 때에, 은전(恩典)이 매우 융숭하여 국가에 큰일만 있으면 고문(顧問)을 내려 어선(御膳)이 잇따르고 상도 헤아릴 수 없이 내려 하루에도 삼접(三接)의 은총이 있으므로 당시 사람들이 신선과 같이 흠망하였다. 그때 문경공(文敬公) 김예몽(金禮蒙)이 여러 사람들 가운데에 제일 연장자였는데, 산물(酸物)이 마침 이르렀는데 김이 여러 사람들 가운데서 완력으로 차지하였다. 제학(提學) 이개(李塏)가 읊기를, “어린애 마음을 면치 못하고 무의(無意)하도다.” 하니, 김이 곧 답하기를, “여력(?力)이 바야흐로 강한 자가 산물을 좋아한다.” 하니, 당시 그 민첩함을 탄복하였다. 속담에, “늙으면 뜻이 없고 음탕한 자는 신 것을 좋아한다.” 하였는데, 두 공의 말이 이 속담을 사용한 것이다. 문강공(文康公) 이(李)가 말하기를, “무릇 사람의 빈부ㆍ귀천ㆍ생사ㆍ영욕은 사람이 만드는 것이 아니어서 진실로 구차하게 해서는 안 되고, 이름과 시호에 있어서도 역시 하늘이 정한 것이요, 분명히 우연이 아니다. 내 꿈에 중추(中樞) 김예몽(金禮蒙)이 원정(遠征)하는데 훌륭한 말이 시가(市街)를 메우고, 어떤 사람이 손에 한 물건을 먼저 가지고 왔는데, 문경공이라고 쓰여 있었다. 꿈을 깨어 매우 이상히 여겼지만, 김에게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1년 뒤에 김이 죽어 내가 도성문 밖에서 집불(執?)하고 그의 시호를 보니, 바로 문경공인데, 꿈과 서로 맞았으니 이로 보면 비록 조그마한 일이라도 하늘이 정해 주지 않은 것이 없다.” 하였다.


[필원잡기 제1권]
세종은 문치(文治)에 힘씀이 만고에 뛰어나서 경자년에 처음으로 집현전(集賢殿)을 설치하여 문사(文士) 열 사람을 뽑아서 채웠으며..... 오로지 문한(文翰)을 맡아서, 고금의 일을 토론하고 아침저녁으로 연구하니, 문장 하는 선비가 성대히 배출되어 인재를 많이 얻게 되었다.
.......수년 사이에 요직에 있는 이는 모두 집현전에서 나왔다. 영상 정인지(鄭麟趾), 좌상 이사철(李思哲), 영상 정창손(鄭昌孫).......판서 김예몽(金禮蒙)...... 등이며

[필원잡기 제2권]
재상에 마승(馬勝)이란 이름을 가진 사람이 있고, 관원 중에 차유(車有)란 이름을 가진 자가 있었다. 문안공(文安公) 이석형(李石亨)과 문경공(文敬公) 김예몽(金禮蒙)이 한 동네에 살았는데, 하루는 마주앉아 장기놀이를 하고 있었다. 내가 중추부사(中樞府事) 송처관(宋處寬)과 뒤에 도착하여 보니 장기판이 이미 이내 종반전에 접어들었다. 내가 보니 이공은 말[馬]둘이 있어 힘이 강하고, 김공은 차(車) 하나가 있으나 세가 약하였다. 내가 말하기를, “마승(馬勝 말이 우세하다)하지 않겠느냐.” 하니, 김공이 척 받아 말하기를, “나는 차유(車有 차가 있다)가 아니냐.” 하여, 서로 크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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