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당 전경

 

 

 

 

 

       집사분정 모습

 

 

 

 

 

 

       제물 봉송 모습

 

 

 

 

 

 

           진설 과정

 

 

 

 

 

       출주 준비 모습

 

 

 

 

 

 

       출주 고유 모습

 

 

 

 

 

       출주 (신주봉안)

 

 

 

 

 

 

           개독 과정

 

 

 

 

 

 

 

           신주 봉안

 

 

 

 

 

 

           참신 모습

 

 

 

 

 

 

              헌작

 

 

 

 

 

 

      계반개 증시저

 

 

 

 

 

 

           독축 모습

 

 

 

 

 

 

              독축

 

 

 

 

  국립문화재 연구소에서는 지난 2003년 사계선생 372주년 불천위 기제사를
  맞아 종가의 제례에 대하여 처음 음식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부터 제례 전 과정을
  4일동안 취재(비디오 촬영포함)하여 책으로 엮었는데, 이 내용을 입수하여 실고자 합니다.

  그날은 국립문화재 연구소의 제례 연구학예사 및 음식연구학예사, 논산문화원,
  건양대학교 김문준교수와 조교수외 학생들과 많은 학자들이 대동하였습니다.

  제례는 집집마다 모든 진설에서 부터 각각 다르나 사계선생 제례에는 전통가례집람을
  기준한 제례 이기때문에 도움이될까 하여 소개 합니다.
 사단법인 沙溪.愼獨齋兩先生紀念事業會 事務局長 良中

   불천위제사의 의례절차  

  □ 불천위제사
  우리나라에서 가장 대표적인 제사는 기제사이다. 기제사는 기일제사 즉 돌아가신 날에 지내는 제사이다.

기제사의 대상은 직계 4대 조상이다. 고조부모로부터, 증조부모, 조부모와 부모의 4대를 제사 지내기 때문에

4대봉사라고 한다.

사당을 모시고 제사를 받들던 종손이 죽어 3년상이 끝난 후 그를 다시 사당에 모실 때가 되면 사당의

신주를 체천(遞遷)한다. 사당은 4대봉사이기 때문의 네 개의 감실(龕室)로 되어 있는데,

서쪽을 상위로 하여 왼쪽에서부터 차례로 고조부모, 증조부모, 조부모 및 부모의 신주가 모셔져 있다.

세대가 바뀌었으므로 5대조의 신주를 사당에서 내 보내고 그 자리에 고조부모의 신주를, 고조부모의

자리에 증조부모를 증조부모의 자리에 조부모를 차례로 옮겨 모시게 된다.

맨 오른쪽의 빈 감실에 새로이 부묘(祔廟)하는 부모의 신주를 모시게 된다. 대진(代盡)된 5대조의

신주는 방계의 후손 집으로 옮겨가거나 묘소에 묻는다.      

신주가 옮기는 것을 천위(遷位) 또는 체천(遞遷)이라 하고, 땅에 묻는 것을 조매(祧埋), 매안(埋安),

또는 매주(埋主)라고 한다.   이렇게 하여 사당에는 항상 4대의 신주만이 봉안되어 있게 된다.

  불천위란 대진이 되어도 신주를 옮기지 않고 자손대대로 영원히 제사를 받들어 모시는 조상이다.

신주를 조매(祧埋)하지 않고 계속 봉사한다고 하여 부조위(不祧位)라 부르기도 하고,

불천위를 모시는 사당을 부조묘(不祧廟)라고 한다.
불천위는 별묘(別廟)를 지어 따로 모시기도 하고 가묘(家廟)에 감실(龕室)을 하나 더 추가하여

모시기도 한다.

 나라에 큰 공을 세웠거나 학덕이 높아서 국가에서 인정한 국 불천위와 유림에서 발의하여 정한 향 불천위

또는 사 불천위가 있다. 국 불천위의 대상은 원칙적으로 문묘(文廟)에 배향된 사람들이다.

사계 김장생은 사후 86년 되던 해인 1717년(숙종 43 )에 문묘에 종사된 이래 올해가 285주년 째이고

지금까지 14대에 걸쳐 제사를 이어 왔고 앞으로도 대를 이어 계속된다.

  불천위제사는 돌아가신 날 지내기 때문에 기제사의 일종이다. 따라서 의례절차는 기제사 때와 같다.

그러나 참사자의 범위나, 제수를 장만하는 규모, 불천위라는 명성이 가지는 사회적 위상 등에서

일반 기제와는 확연히 구별되는 특별한 제사이다.

  4대봉사의 경우 참사자의 범위는 8촌 이내의 친족으로 한정되지만, 불천위는 대를 이어 영원히

계속되므로 후손들의 범위가 확대될 뿐만아니라 학맥과 혼인관계를 통하여 타문중에서도 참여하는

대규모 행사가 된다.      

제수의 준비도 최고의 정성과 솜씨를 발휘하여 그 종류와 양도 특별히 성대하게 차리는 ‘큰 제사’가 된다.

훌륭한 조상의 추념 행사를 통하여 명가문의 전통과 정체성을 강화하고, 때로는 문중의 위세를

대외적으로 과시하는 대축제의 형태로 전승되어 왔다.

  □ 집사분정
  저녁 8시경 제관들이 거의 다 도착하게 되면 도기(到記)를 작성한다.    

 제사 참사자들에 대한 방명록과 같은 것이다.      

 도기는 원래 제관들이 많이 참례할 때에는 도착하는 순서대로 적어 나가는 것이지만

 이제는 제관들이 20~30명에 불과하므로 어느 정도  도착하게 되면 후손들의 세대별로

 분류하여 윗대부터 차례로 적어 나간다.    

 기록은 사계 선생의 13대손으로 사단법인 사계,신독재 양선생 기념사업회 사무국장을 역임하고

 있는 김양중씨가 담당하였다.

  옥색 도포에 유건 차림의 의관을 갖추고 정좌하여 한지로 철하여 만든 도기록에 벼루에 먹을 갈아

  붓으로 적어 나갔다.    

 표지에는 ‘癸未八月初三日 到記’ 라고 적고 다음 장부터 세대별로 연장자순으로 성명과 거주지를

 위에서 아래로 적어 나간다.   직계 자손이 아닌 방손(傍孫)은 이름 위에 ‘傍’자를 부기한다.

 사계의 후손은 현재 16대손까지 내려와 있고 종손은 14대이다.   이날 제사에는 10대손부터 15대손에

 걸쳐 약 50여명의 후손들이 참례하였다.    가장 연장자는 연산에 살고 있는 10대손 김영신(91세)옹이고

 16대손은 아직 유아이므로 참석하지 않았다.

  참사자가 그렇게 많지 않으므로 집사 분정도 도기를 작성한 후 종손을 증심으로 둘러앉아 수의하여

  각 소임의 적임자를 선임한다.    

  선임된 집사는 도기에 기록된 성명 위에 소임을 적어넣는 방법으로 대신한다.


 최종 확정된 집사분정은 다음과 같다.

      初獻 金善元
      亞獻 金善五
      終獻 金容嵩
      大祝 金容進
      執事 金良中
      執事 金德淳
      陳設 金容彦
      珍說 金容旭    

  아헌 김선오씨는 사계의 둘째 아들 신독재 김집의 종손으로 14대손이다.
  종헌 김용숭씨는 사계의 8남 규(規+木) (두계공파)의 후손으로 12대손이며 대전에 살고 있다.
  대축(축관), 김용진씨는 사계의 숙부 김입휘(사의공)의 후손이므로 방손(傍孫)에 해당한다.
  집사 김양중씨는 사계의 손자 김익훈(충헌공)의 후손으로 13대손이고, 김덕순씨는 사계의

  손자 김익희(창주공)의 후손으로 15대손이다.

  □ 제청(祭廳)의 준비
  제례는 사당 앞에 있는 염수재(念修齊)에서 거행한다.    

  염수재는 정면 4칸, 측면 3칸의 목조건물로 좌측 2칸은

  마루바닥으로 된 대청이고, 오른쪽 2칸은 온돌방으로  되어 있으며 측면 3칸 가운데 전면의 1칸은

  툇마루로 되어 있다.        

  건물의 뒷산에 있는 사계 선생의 묘소에 제사를 올리기 위한 재실로 마루에 걸려 있는 중수기 현판의

  기록으로 보아  1847년(헌종13)에 지어진 건물이다.

  저녁이 되면 염수재 대청마루에 제청을 마련한다. 제사를 올리는데 필요한 기구를 총칭하여

  제구(祭具)라 하고 그릇 종류는 제기(祭器)라고 한다.   제구들을 법식에 따라 바른 위치에

  배열하는 것을 진기(陳器)라고 한다.
  
 먼저 천장에 앙장(仰帳)을 치고 마루의 맨 뒤쪽에 병풍(屛風)을 둘러친다.    

 병풍은 사계 선생의 문묘배향교지 전문을 영인하여 만든 12폭 병풍이다.      

 표지에 ‘광산김씨 문원공 사계선생 종사문묘서영인 -

 光山金氏 文元公 沙溪先生 從祀文廟書影印’이라고 적혀 있다.

  이 교지는 가로 6.3m, 세로 88cm로 총 624자가 종서 48줄로 쓰여진 것으로

  1717년(숙종43)년 내려진 것이다.  

 사계의 학문과 사상이 국가사회에 크게 기여하였고, 특히 예학의 대가로서 인간생할의

 도덕성 확립에 이바지한 공이 크므로 문묘에 배향하도록 임금이 명을 내렸다는 내용이다.  

 오늘날까지 불천위제사를 이어져 오게 한 국가 공인 문서이다.    

 이때로부터 올해가 285주년이 되는 불천위제사이다.

   병풍의 앞쪽 중앙에 신위를 모실 교의(交椅)를 놓고 그 앞에 제상을 설치한다.  

 제상 위의 양쪽 가장자리에 촛대를 하나씩 놓는다.    

 제상 앞쪽에는 자리를 깔고, 중앙에 향안(香案)을 놓고, 그 위에 향로와 향합을 올려 놓는다.    

 향안의 왼쪽에는 축문을 넣은 축함을 놓고 오른쪽에는 술병과 술주전자 등을 놓을

 주가(酒架)를 마련한다.  

 향안의 앞쪽에는 강신례 때에 사용할 모사기(茅沙器)와  헌작 후 술잔을 비우기 위하여

 퇴주기(退酒器)도 놓아 둔다.  

 그리고 제청 바깥쪽 마루에는 관세위(盥洗位)로 물을 담은 세수대야와 수건도 준비해 둔다.

(주)
  * 앙장(仰帳) : 제례를 올릴 장소의 천정에 치는 포장이다.    

     역막이라고도 한다.   묘제 등 야외에서 지낼 경우에는 햇빛을 가리는 차일(遮日)을 친다.
  * 교의(交椅) : 신주나 위패를 봉안하는 의자이다.
  * 향안(香案) : 향로(香爐)와 향합(香盒)(향을 담는 그릇)을 올려놓는 작은 상이다.

     향상(香床)이라고도 한다.
  * 모사기(茅沙器) : 모래와 띠묶음을 담는 그릇이다.   이는 땅(음)을 상징한다.

     강신때 강신술을 모사기에 붓는 것은

    땅속에 있는 신(魄)을 부르는 의식이다.
  * 관세위(盥洗位) : 제례 때 헌관이나 집사가 손을 씻기 위하여 세수대야와 수건을 설치한 곳이다.
  * 시접(匙楪) : 수저를 올려놓는 그릇


□ 제수의 진설(陳設)
  제사에 올리는 제사 음식을 제수라 하고 제기와 제수를 격식을 갖추어 제상에 배열하는 것을

  진설이라고 한다.
  제사 하루 전날인 입제일 낮에 하루 종일 마련한 제수를 제사 당일 자정이 지나면 소반에 담아

  안채로 부터 제청으로 옮겨 제상의 왼쪽의 대반(大盤 )위에 종류별로 가지런히 정돈하여 둔다.
  
 제사를 올리는 시각은 기일 당일 첫 새벽에 지낸다. 귀신은 음도를 따르므로 고요하고 그윽한 때에

 행한다고 한다. 보통 당일 자정이 지나 새날이 되면 지내게 되는데 이 종가에서는 전통적으로 항상

 새벽 3시가 되어야 지낸다고 한다.    

집사들은 모두 예복으로 갈아입고 3시가 되면 관세위에 가서 손을 씻고 제수를 진설하기 시작한다.  

제수의 진설형태는 ‘가가례(家家禮)’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지방마다 가정마다 각기 다양한 양태로

전승되어 오고 있다. 그 이유는 <주자가례>를 비롯한 각종 예서에부터 진설법이 각기 다르게

예시되어 있고 각자의 의견에 맡긴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예서의 내용과 제사 상차림에 적용되는 공통사항과 관행적인 격식을 참고하면서 이 종가의

상차림을 살펴보기로 한다.

(1) 단설(單設), 합설(合設), 각설(各設)
  조상의 제사를 모실 때 돌아가신 한 분 만을 모시면 단설이라 하고 그 배우자와 함께 모시면 합설이라 한다.

  예서에서도 주자의 <가례>에는 단설로, 정자의 <제례>에는 합설로 나와 있어 그 이론적 근거를 달리하고,

  우리나라에서도 지방과 가문에 따라 다르게 적용하여 많은 논란이 되어 왔다. 기제사는 돌아가신 날 지내는

  제사이므로 이론상으로는 기일에 해당하는 한 분만 모시는 것이 올바른 예로 되어 있으나

  우리나라에서는 예의 근본은 인정에 있다 하여 두 분을 함께 모시는 합설로 지내는 것이 통례로 되어 있다.

  합설의 경우에도 신주를 한 교의에 모시고 제수를 한 상에 차리느냐 아니면 각각 다른 교의와 제상에

 차리느냐에 따라 합설과 각설로 구분된다.     각설은 모든 제사 음식을 신위의 수만큼 완전하게

 따로 진설하는 반면, 합설의 경우에는 메와 갱, 면(국수)과 편(떡), 그리고 잔반만 따로 올리고

 나머지 제수는 공통으로 차린다.

  예서에서는 <국조오례의>에서만 합설로 규정되어 있고 <주자가례>를 비롯하여 이이의 <제의초>나

  김장생의 <가례집람>등의 가례류에는 모두 각설을 예시하고 있다.

(2) 제수의 상차림
  모든 예서에서 제수의 차림이 4열로 제시되어 있는데 이이의 <제의초>에서만 탕(湯)이

 한 줄 추가되어 5열로 되어 있다.    제상의 맨 앞쪽 즉 신위에서 가장 바깥 쪽인 제5열에 과실 종류를 놓는다.

 그 바로 안쪽 제4열에는 포와 나물 종류를 놓고 다음 제3열에는 탕을, 그 뒤쪽 제2열에는 적(炙)과

 전(煎) 종류와 면(국수)와 편(떡)을 차린다.
  
   마지막으로 신위와 가장 가까운 제1열에 시접(匙楪)과 잔반을 놓고 메와 국을 차린다.  

  현재는 거의 모든 가정에서 탕을 쓰고 있으므로 보통 5열로 차리는 것이 일반적이다.  

  일반 관행으로 정립된 진설의 방법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 고서비동(考西妣東) : 고위는 서쪽, 비위는 동쪽에 자리하게 한다. 고위의 신위, 메, 국, 술잔은

      제사자의 위치에서 볼 때 왼쪽에, 비위의 것은 오른쪽에 차린다. 비위가 여러 분일 경우에는

      서쪽에서부터 동쪽으로 차례로 놓는다.

  ○ 반서갱동(飯西羹東) : 메는 서쪽, 국은 동쪽에 놓는다. 신위의 기준으로 볼 때 메는 오른쪽,

      국은 왼쪽에 되어 산 사람과 반대의 위치이다.

      음양의 원리에 따라 사후세계는 음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 어동육서(魚東肉西) : 생선은 동쪽에 육류는 서쪽에 놓는다.

  ○ 두동미서(頭東尾西) : 생선의 머리는 동쪽으로, 꼬리는 서쪽으로 위치하게 한다.

  ○ 적전중앙(炙奠中央) : 적은 술잔을 드릴 때마다 올리는 특식으로

      제상의 가장 중심되는 자리에 올린다.

  ○ 좌포우해(左脯右醢) : 포는 왼쪽에, 생선젓은 오른쪽에 차린다.

      이는 제사자의 위치에서 볼 때이다. 서포동해(西脯東醢)라고도 한다.  

  ○ 과실의 위치 : 예서에서는 과실을 제상의 남쪽 끝줄에 차리는 것으로 예시하고 있을 뿐

      과실의 종류나 순서를 정해 놓지 않고 있다.  보통 대추, 밤, 배, 감 네 가지를 기본과실로 하여

      철에 따라 계절 과실을 적절히 더하여 차린다.    

      과실을 놓는 순서에 따라 지방과 가문에 따라 홍동백서(紅東白西)니, 조율이시(棗栗梨柿)

      또는 조율시이(棗栗柿梨)니 하여 이견이 분분하나 중요한 사항은 아니다.

  새벽 3시경, 염수재의 앞쪽 두 기둥에 걸려있는 홍사초롱에 촛불을 밝히고,

  제청 처마 아래 마당에 설치대어 있는 정료대(庭燎臺)에도 장작불을 붙였다.

  정료대는 옛날에 제례 때에 장작불을 피워 불을 밝히던 돌기둥이다.

 전기가 들어오면서 그 기능이 상실하고 역사의 유물로 전락하였지만 이 날 옛 모습을 재현하였다.

  이제 상차림의 소임을 맡은 집사들이 진설을 시작한다. 먼저 제상의 양쪽 가장자리에 놓인

  촛대에 촛불을 밝히고 제청 왼쪽 대상에 준비되어 있는 제수를 순서에 맞추어 제상에 차례로

  옮겨 진설한다.

  첫째, 제수의 진설은 합설이다. 이 날이 사계 선생의 372주기 기제사이지만 비위 창녕조씨와

  합설로 두 분을 함께 모시며 제수 역시 한 상에 함께 차린다.

  즉 한 제상에 메와 국, 술잔만 따로 올리고 나머지 제수는 공통이다.

  예서에서는 고위와 비위의 신위를 따로 모시고 제상도 둘로 하여 모든 제수를 각각 따로 차리는

  각설을 예시하고 있으나 현재 대부분의 가정에서는 합설하는 것이 통례로 되어 있다.

  둘째, 상차림은 5열로 배열한다. 먼저 제상의 맨 앞쪽 제5열에 과실을 놓는다.

  과실은 대추·밤·배·감(곶감)의 4가지를 기본으로 하고 그 외에 계절과실과 유과를 더하여 놓는다.

  배열순서는 기본과실 4가지는 홍동백서(紅東白西)를

  적용하여 밤은 서쪽 끝에, 대추는 동쪽 끝에 먼저 놓고, 그 다음에 배를 서쪽의 밤의 안쪽에,

  곶감을 동쪽의 대추의 안쪽에 놓는다. 그리고 그 사이에 다른 과실을 놓아, 밤·배·잣·호두·은행·

  수박·유과·사과·곶감·대추의 순으로 10가지를 과실을 배열하였다.

  다음에 제4열에는 맨 왼쪽에 포를 놓고, 다음에 도라지·녹두·고사리 3채로 된 숙채(熟菜)와

  청장(간장), 그리고 조기와 식혜를 놓고 맨 오른쪽에 침채(김치)를 놓는다. 조기는 해(醢)(젓갈)을

  대신하여 좌포우해(左脯右醢)의 격식을 따르고 식혜도 함께 놓았다..

  다음 제3열은 육탕·어탕·계탕의 3탕을 놓는다.
  
  다음 제2열은 중앙에 적상(炙床)을 중심으로 그 왼쪽에 육회와 육전을,

  오른쪽에 어회와 어전(생선전)을 놓아,

  적전중앙(炙奠中央)에 어동육서(魚東肉西)의 배열이 되게 하였다.    

  왼쪽 가장자리에는 면(국수)을 놓고

  오른쪽에는 떡(餠)을 놓았다.  

  편틀은 둘을 놓고 그 옆에 편청도 곁들여 놓았다.  

  적상은 적을 올리기 위한 조그만 상으로 나중에 헌작례 때에 적을 올리게 되므로 소금접시만 올려놓았다.  

  삼헌 때에 올리게 될 육적·어적·계적은 제상 오른쪽 밑에 놓아둔다.

  마지막으로 신위에 가장 가까운 제1열은 수저를

  담는 그릇인 시접을 중앙에 놓고 그 좌우에 고위와 비위의 잔반을 각각 놓는다.

  메와 국은 식기 때문에 나중에 진설한다.  주가에는 술병과 주전자를 준비하고

  술은 청주로 준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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