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세 김부필(金富弼)

(1516∼1577) 62歲, 조선 중기의 유현,  字는 언우(彦遇), 호(號)는 후조당(後彫堂), 아버지는 관찰사 연(緣)이며, 어머니는 정부인 창녕조씨(昌寧曺氏)로 진사 치당(致唐)의 딸이다.
퇴계 이황의 문인이며 1537년(중종 32) 생원시 동방생원과에 2등 11인으로 합격 하였으나 벼슬길에 나가지 않고 오직 학문에 전념하였다. 1567년(명종 23) 조정에서 돈독한 행의를 듣고 사관(祠官)으로 등용하였으나 부임치 않았고 이듬해에 효능(孝陵)참봉에 제수하니 퇴게선생이 편지를 보내 출사토록 권하였으나 부임하지 않았다. 익년 정능 참봉에 제수하여도 또한 부임치 않으니 퇴계 선생이 "후조당 주인은 절조가 굳세어 임명장이 내려도 반기지 않네, 앉아서 빙설같은 매화 향기를 대하여 도의 존재를 눈여겨 보며 읊조리기만 하네." 하고 시를 지어 보냈다. 학문을 근본에 두고 실지에 힘썼으며 퇴계 선생의 문하에 들어가서 보고듣는 것이 더욱 정순정대(精純正大)하여 평생에 힘을 쏟은 것은 심경(心經)이었다. 자제에게는 효제충신을 먼저 가르쳤고 항상 말하기를 "글 배우는데는 효제를 근본으로 함이 마땅하다."하였다. 1816년(순조 17) 영남 유생이 상소하여 작위와 시호를 내리기를 청하였다. 1822년(순조 23) 자헌대부 이조판서 겸 성균관 좨주(祭酒), 세자시강원 찬성(贊善)에 추증되고 시호는 문순공(文純公)이며 그 때 거처하던 후조당 건물이 현존하며 문화재로 지정되었다. 후인이 사우를 세워 향사하며 무사(無嗣)하므로 제남 해(弟男 垓)를 입양하여 후사를 의탁하였다.
묘(墓)는 안동시 와룡면 서현동에 있다.
(見朝鮮王朝實錄, 國史大事典, 退溪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