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 김청(金廳)

조선 전기의 문신, 아버지는 증판서(贈判書) 화(華)이다.
태종 때 역과(譯科) 출신으로 중국어를 잘 하였다. 승문원의 정자, 저작랑, 교리, 참교등을 거쳐 1419년(세종 2) 천추사(千秋使)의 통역관으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곧 첨지 승문원사에 임명되었으나 그 이듬해 황제가 주본(奏本)에 날자를 정하지 않았다 하여 문책하자 임금이 부득이 신장(申檣), 허조와 함께 하옥시켰고 이내 상주로 귀양 보냈다가 12월에 직첩(職牒)을 돌려주고 서용(敍用)되었다. 1428년(세종 11) 대호군(大護軍)으로 임금의 명을 받들어 명나라 사신에게 성리대전의 어록을 물었고 1433년(세종 16) 지신사 안숭선(安崇善)과 같이 파저강(婆猪江)의 야인을 토벌하여 성죄하는 방문을 초하여 바쳤다. 이듬해 공조참의에 임명되고 곧 첨지중추원사에 승진 되었으며 1439년(세종 22) 경창부윤, 1441년(세종 24) 중추원 부사에 승진되었다. 1450년(문종 1) 지중추원사에 승진되고 1454년(단종 3) 임금이 명하여 종친 부마, 의정부당상, 육조판서, 친공신 이품이상, 승정원 당상에게 선물을 하사하는데 단자 한 필을 받았으니 장차 흉배단령을 입히고자 함이었다. 1455년(세조 1) 좌익원종 2등공신에 책록되었고 시호는 희정공(僖靖公)이다
묘(墓)는 실전하여 중원군 금가면 잠병리 막현에 설단(設壇)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