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세 김득남(金得男)

(1601∼1637) 37歲, 조선 중기의 무신이며 충신, 字는 선술(善述), 호는 매죽헌(梅竹軒), 아버지는 증참판 억창(億昌)이며, 어머니는 증정부인 의성김씨로 참봉 지순(之淳)의 딸이다.
선원 김상용의 문인이었고 1620년(광해 13) 무과에 급제하여 1623년(인조 1) 선전관으로 인조반정으로 왕위가 바뀌어질 때 창졸간에 어보(御寶)를 분실했는데 공이 이를 찾아서 주정대신(主政大臣)에게 밀납(密納)하였다. 이듬해 이괄이 난을 일으킴에 공주까지 어가를 호종하였고 안현(鞍峴)에서 적을 격파하여 그 공으로 초계군수에 이어 백령진 첨절제사에 제수되었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 때 철곶첨사(鐵串僉使)로서 세자를 강화도에 호종할 때 오랑캐가 사녀(士女)를 포로로 잡아가는데 그 참상을 보고 추격하려 하니 세자가 활과 말, 갑옷을 주었다. 1637년(인조 15) 부평 계양산하(桂陽山下) 굴포(掘浦)까지 진격하면서 분전, 적 수백명을 베이고 포로된 사녀들을 모두 탈환하였다. 드디어 승세로 추격하였으나 날은 어두웠고 말은 지쳐 남한산성으로 향하여 달리다가 말이 넘어지고 기진맥진하여 역부족으로 장렬히 전사하였다. 병조판서에 추증되고 충신의 정려(旌閭)를 명받고 강화의 충렬사(忠烈祠), 무안의 모충사 및 표충단에 배향되었다.
묘(墓)는 전남 무안군 해제면 상감산에 있다.
(見朝鮮王朝實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