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세 김개(金鎧)

독송정 김개의 묘소(1504∼1569), 66歲 조선 중기의 문신. 字는 방보(邦寶), 호는 독송정(獨松亭), 아버지는 증판서(贈判書) 소윤(昭胤)이며, 어머니는 증정부인(贈貞夫人) 파평윤씨(坡平尹氏)로 판서(判書) 계겸(繼謙)의 딸이다.
1525년 (중종20) 진사시(進士試)에 장원으로 합격하고 1540년 (중종35)에 식년시 문과에 7인으로 급제하여 승문원 주서로 선임되어 세자시강원 설서 사서와 성균관 전적 사간원 정언과 호당(湖當)에 뽑혔고, 그 후 홍문관 부수찬으로 부름을 받아 사간원 헌납, 홍문관 교리, 사헌부 지평, 이조정랑, 의정부 검상, 사헌부 장령, 군자감 부정, 사헌부 집의, 홍문관 응교, 선공감정, 예빈시정등 여러 요직을 역임하였고 1552년(명종 8) 정시에 장원 급제하자 특별히 통정을 제수하였으나 정시의 시종관으로 만류되었고 황해, 충청양도의 안찰사가 되었으며 공조, 형조, 이조참의와 장예원 판결사, 사간원 대사간이 되었고 1559년(명종 15)에 특별히 가선으로 승자하여 대사헌 이조참판, 평안감사를 역임하였으며 1561년(명종 17)에 한성부 판윤을 배수하고 호조, 형조, 이조판서를 거쳐 자헌대부 의정부 좌참찬 겸 지의금부사, 춘추관사 오위도총부 도총관에 이르렀고 지돈영부사가 되어 특진관으로 경연에 들어가 포부를 전달하는데 당시 사람들과 의견이 맞지 않아서 금천농막으로 물러나 생을 마쳤다. 성품이 청렴 강직하여 명종이 청렴 공근한 신하를 뽑아 연회를 베풀 때 퇴계 이황(李滉) 동고와 함께 참석하였으며 청백리(淸白吏)에 녹선되었다.
配는 정부인 죽산안씨(竹山安氏)이다.
묘(墓)는 전북 순창군 인계면 마흘리에 있다.
(見朝鮮王朝實錄, 國朝文科榜目)