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世 김희(金憙)

(1729∼1800). 72歲, 조선 중기의 문신, 字는 선지(善之), 호는 근와(芹窩), 사호(賜號)는 술우평(述尤坪), 아버지는 증영의정 상경(相庚)이며, 문원공(文元公) 장생(長生)의 후손. 어머니는 증정경부인 덕수이씨로 참봉 광택(廣澤)의 딸이다.
1762년(영조 39) 생원시에 장원으로 합격하여 경릉참봉, 북부봉사를 지냈다. 1773년(영조 50) 증광시 문과에 병과(丙科) 50인으로 급제하여 승문원 가주서를 거쳐 권지부정자에 선보되었다. 그 후 설서 겸 춘추관 기사관이 되어 문학으로 중망에 올랐고 전라좌도 경시관으로 있을 때는 과거의 공정을 기하였다. 이어서 수원부사, 대사간 대사성을 역임하고 강원도 관찰사가 되고 왕명으로 주자전서(朱子全書)를 점비(點批)해 올렸으며 병조, 호조, 이조, 공조, 예조참판을 거쳤다. 송자대전을 교정해 올려 왕이 술우평이라 사호하였고 광주목사로 있을 때 충장공 김덕령장군의 유사를 지었으며 형조, 예조판서와 경기도 관찰사를 거쳐 서흥부사와  규장각 직제학, 함경도 관찰사가 되었고 의정부 우의정에 올랐다가 만년에 연산 향리로 퇴거하였다. 시호는 효간공(孝簡公)이며 임금이 지은 제문을 하사받았고 영정과 유고가 있다.
묘(墓)는 충남 논산시 연산면 관동리에 있다.
(見朝鮮王朝實錄, 國朝文科榜目)