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세 김익훈(金益勳)

충헌공 김익훈의 묘소(1619∼1689). 71歲,  조선 중기의 문신, 字는 무숙(懋叔), 아버지는 증영의정 반(槃)이며, 문원공(文元公) 장생(長生)의 손자. 어머니는 증정경부인 연산서씨로 증참판 주(澍)의 딸이다.
1648년(인조 26) 음직으로 의금부도사에 제수되고 사옹원 직장을 거쳐 전생서 주부로 승진하였다가 시복시로 옮겼다. 첨정에 승진되어 내승(內乘)을 겸했고 장성부사로 취임, 선정을 베풀어 거사비(去思碑)을 세웠다. 공조정랑, 한성서윤, 군기시첨정, 사도시정, 장악원정, 돈녕부도정을 거쳐 외직으로 남원부사, 수원방어사, 충청병사를 지냈다. 1678년(숙종 5) 광주부윤으로 임명되자 반대파의 탄핵을 받았다. 어영대장에 임명되었다가 전라병사로 임명되었으나 또 반대파의 반대로 1680년(숙종 7) 다시 광주부윤에 임명되었다. 곧 가선에 승진되어 한성부 우윤에 부총관을 겸했고 경신대출척의 공으로 부사정훈에 추록되고 광남군(光南君)에 봉해졌다. 이듬해에 한성부 좌윤, 형조참판에 임명되고 익년에 경기총융사를 겸했다가 어영대장으로 옮겼다. 1687년(숙종 14) 부총관에 제수되고 가을에 충청병사에 제수되었다. 1689년(숙종 16) 기사환국으로 남인이 세력을 잡자 강계로 유배되었다가 투옥되어 가혹한 고문을 당하여 죽었다. 이조판서에 추증되었고 시호는 충헌공(忠獻公)이다.
配는 정부인 안동김씨(安東金氏)이다.
묘(墓)는 경기도 광주군 퇴촌면 무수리에 있다.
(見朝鮮王朝實錄, 國史大事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