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세 김진상(金鎭商)

(1684∼1755). 72歲,  조선 중기의 문신. 字는 여익(汝翼), 태백(太白), 호는 퇴어자(退漁子), 아버지는 증판서 만채(萬埰)이며, 문원공(文元公) 장생(長生)의 현손, 어머니는 증정부인 전의이씨로 집의 항(抗)의 딸이다.
1699년(숙종 26) 진사시에 3등 45인으로 합격하였고 1712년(숙종 39) 정시 문과에 병과(丙科) 15인으로 급제하여, 1718년(숙종 45) 주서, 수찬에 제수되었고 이듬해 사헌부 지평(持平)을 지냈다. 1722년(경종 3) 신임사화(辛壬士禑)로 무산(茂山)에 유배 되었다가 1724년(영조 1) 영조가 즉위하자 사면되어 이조 정랑(吏曹正郎)에 등용되었고, 이어 수찬, 필선, 부교리,사간, 이조참의, 부제학(副提學) 등을 역임했다. 1741년(영조 18) 대사헌에 승진되고, 1753년(영조 30) 좌참찬(左參贊)에 이르렀다. 학덕으로 사류들의 추앙을 받았고 글씨에도 능하여 이름을 떨쳐 많은 비문(碑文)을 썼다. 타인의 소점이 된 평장동에 처음으로 왕자공의 유허비를 세워 유허를 보존토록 하였다. 저서로 퇴어자유고가 있으며 1864년(고종 2) 부조(不 )의 은전을 받았다.
配는 정부인 한양조씨(漢陽趙氏), 정부인 경주박씨(慶州朴氏)이다.
묘(墓)는 경기도 광주군 퇴촌면 무수리에 있다.
(見朝鮮王朝實錄, 國朝文科榜目)