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세 김정준(金廷俊)

김책(金策)의 아들로 고려때의 문신, 서기 1035년에 전중시어사(殿中侍御史)에 제수되었고 1040년(정종 7년) 이부원외랑(吏部員外郞)과 권지승선(權知丞宣)이 되었다가 1043년(정종 10년) 승선(丞宣)이 되었다. 1049년(문종 4년) 중추원사(中樞院事)와 판어사대사(判御史臺事)를 거쳐 1053년(문종 8년) 참지정사(參知政事)가 되었다가 1055년(문종 10년) 내사시랑평장사(內史侍郞平章事), 1057년(문종 12년)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로 치사(致仕)할 때 어구마(御廐馬) 1필(匹)을 하사받았다.

  • 정종 2년 을해 정월 정미일에 김정준을 전중시어사로 삼았다.
  • 7년 경진 2월 정유일에 이부원외랑 김정준을 권지승선으로 삼았다.
  • 10년 계미 2월 임인일에 김정준과 고숙성을 좌우승선으로 삼았다.
  • 문종 4년 기축 3월 무오일에 김정준으로 중추원사와 판어사대사를 삼았다.
  • 5월에 중추원사 김정준을 시관으로 삼아 박인수 등 2인을 뽑았다.
  • 6년 신묘에 식목도감 최충등이 아뢰기를 [급제한 이신석이 씨족(氏族)을 기록하지 아니 하였으니 마땅히 등조하지 못하게 하여야 한다] 하니 시랑 김원충과 판어사대사 김정준이 아뢰기를 [씨족을 기록하지 않은 것은 그 조부의 과실이요 신석의 죄가 아니며 하물며 힘써 공부하여 임금의 연전에서 급제하였고 몸에 허물이 없으니 잠신의 반렬에 참여시키는 것이 합당하다]하니 임금이 말씀하시기를 [주사한 바에 의하라]하였다.
  • 8년 계사 7월 기미일에 김정준과 박성걸을 참지정사로 삼았다.
  • 10년 을미 7월 경신일에 김정준을 내사시랑평장사로 삼았다.
  • 12년 정유 11월 정축일에 김정준을 문하시랑평장사로 삼았다.
  • 14년 기해 정월 정유삭에 건덕전에 거동하여 조하를 받고 왕을 보좌하는 신하들과 잔치를 베풀고, 평장사로 치사한 김정준도 잔치에 참여하라 하여 밤늦게 파하고 어구마 일필을 하사하였다.[참고문헌 고려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