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세 김상복(金相福)

문헌공 김상복의 묘소(1714∼1782). 69歲, 조선 중기의 문신. 字는 중수(仲受), 호는 직하(稷下), 아버지는 효정공(孝靖公) 원택(元澤)이며, 어머니는 증정경부인 청송심씨로 우윤 정보(廷輔)의 딸이다.
1740년(영조 17) 알성방 문과에 을과 1인으로 급제하여 검열(檢閣), 사서, 정랑, 필선, 보덕, 부제학, 양관대제학, 이조판서, 혜당을 역임하고 1763년(영조 40)에 우의정이 되고, 좌의정을 거쳐 1772년 영의정을 배수하였으나 영상(領相0이 된 처음 자리에서 왕실을 바로잡고 의리 밝힐 것을 진주(陳奏)하니 왕이 기뻐하지 않고 파직을 명했고 또 다시 쌓인 포부를 진주하니 왕이 삭직을 가시(加施)하였다. 후에 영중추부사(領中樞府事)로 전임되었다. 벽파(僻派)로서 1775년(영조 51) 전 참판(前參判) 서명선(徐明善)이 정조의 대리청정을 반대하는 영의정 한익모(韓翼蓍)와 좌의정 홍인한(洪麟漢)을 논박하는 상소를 했을 때, 왕으로부터 서명선의 상소문에 대한 의견을 질문받았으나 여론을 잘 알지 못해 대답을 못하겠다고 하여 삭직당하고 삼사가 발의하여 마침내 공주(公州)로 유배되었다가, 이듬해 풀려나 전리로 돌아왔고. 1800년(선조 1)에 복관되었으며 시호는 문헌공(文獻公)이다.
配는 정경부인 죽산안씨(竹山安氏)이다
묘(墓)는 충남 홍성군 서부면 양곡리에 있다.
(見朝鮮王朝實錄, 國朝文科榜目)