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세 김우형(金宇亨)

(1616∼1694) 79歲 조선 중기의 문신, 字는 도상(道常), 호는 기오당(寄傲堂), 아버지는 증좌참찬 헌( )이며 어머니는 증정부인 의령남씨로 장령 탁(晫)의 딸이다.
1650년(효종 2) 증광시 문과에 병과 23인으로 급제하여 함평군수가 되어 임기를 마치고 돌아올 때 행색이 너무 초라할 정도로 청백하였다. 1657년(효종 9) 사간원 정언, 사헌부 지평을 거쳐 1659년(효종 11)에 부수찬, 홍문관 교리가 되어 시독관으로 임금앞에서 통감강목과 대학을 강론하였다. 헌납을 거쳐 1661년 서장관으로 중국에 다녀왔고 사간, 수찬, 집의를 거쳐 의주부윤으로 있을 때 중국을 왕래하는 사신들이 『공의 신의와 청덕(淸德)은 세상에 으뜸이며 고금에 드문 분』이라고 하였다. 1666년 좌승지, 참의를거쳐 이듬해 황해도관찰사, 형, 병조참판, 도승지, 한성판윤, 공조판서를 거쳐 1685년에 기사(耆社)에 들어갔다. 1687년에 개성유수가 되고 1689년 기사환국(己巳換局)을 개탄하고 녹을 받지않았다.
어려서부터 기국이 뛰어나고 문행이 있으며 글씨를 잘 써서 공이 기주관으로 있을 때 조정에서 공을 비필주서(飛筆注書)라고 별명 붙였다고 하는데 특히 예서에 능하였다. 경기도 관찰사로 있을 때 성삼문의 신주가 홍주로 돌아올 때 호송하여 사림이 이에 감동, 사우를 세웠다. 저서로 옥은유고(玉隱遺稿)가 있고 시호는 정혜공(貞惠公)이다
묘(墓)는 경기도 용인군 외서면 백암리에 있다.
(見朝鮮王朝實錄, 國朝文科榜目)