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세 김운택 (金雲澤)

충정공 김운택의 묘소(1673∼1722). 50歲, 조선 중기의 문신. 字는 중행(仲行), 호는 백운헌(白雲軒), 아버지는 경헌공(景獻公) 진구(鎭龜)이며, 어머니는 정경부인 한산이씨로 지평 광직(光稷)의 딸이다.
1699년(숙종 26) 진사시에 3등 15인으로 합격하였고 1704년(숙종 31) 춘당대방 문과에 병과(丙科) 5인으로 급제하여 벼슬이 설서, 병조좌랑, 전라도 도사, 지평을 거쳐 홍문관의 선발로 이조(吏曹)에 녹선되었다. 그 후 사복시정에 승진 되었다가 응교, 동부승지, 형, 형조참의, 대사간, 대사성, 부제학(副提學)등을 역임했다. 글씨를 잘 써 존호를 색인 인장 및 능비의 전자를 쓰고 가선에 승진되었다.  호조참판(戶曺參判) 등을 거쳐 형조참판, 좌승지에 임명되고 또 성균관 대사성을 지냈으며 홍문관의 금오(金吾), 춘추(春秋), 비국(備局)을 겸했다. 그러나 1721년(경종 2) 신임사화(辛壬士禍)로 영변(寧邊)에 유배된 뒤 다시 반역을 도모한다는 목호룡(睦虎龍)의 무고로 옥중에서 장살(杖殺)되었다. 1725년(영조 2)에 신원되어 이조 판서에 추증(追贈)되었고 시호는 충정공(忠貞公)이다. 1852년(철종 4)에 부조(不 )의 은전을 받았고 유고가 있다.
配는 정부인 청송심씨(靑松沈氏)이다.
묘(墓)는 충남 서산군 성연면 아남리에 있다.
(見朝鮮王朝實錄, 國朝文科榜目)