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세 김여석(金礪石)

충목공 김여석의 신도비(1445∼1493) 49歲. 조선 전기의 문신, 字는 은경(殷卿), 호는 심재(心齋), 아버지는 증판서(贈判書) 수(洙)이며, 어머니는 증정부인(贈貞夫人) 안동권씨(安東權氏)로 집의 항(恒)의 딸이다.
충목공 김여석의 도산서원점필재 김종직의 문인이었고 1465년(세조 11) 진사시에 합격하고 동년 별시 문과에 을과 2등 1인으로 급제하였다. 세조가 영재라 칭찬하고 동궁에게 장차 좋은 보필이 될 것이다 하였으며 또한 최항을 시켜 "무기욕(母嗜欲: 욕심을 부리지 말 것)" 아홉자를 쓰게 하고 어새(御璽)를 눌러 주었다. 그 후 검열 성균관 학유, 군자감 주부, 이조, 병조의 좌랑을 지냈다. 1467년(세조 13) 이시애의 난에 영의정 조석문과 함께 동심협력하여 평정하니 정충출기포의적개(精忠出氣布議敵愾) 1등 공신에 책록되었다. 곧 동부승지에 발탁되고 우승지를 거쳐 도승지에 올랐으며 1479년(성종 11) 명나라가 건주위(建州衛)를 치는데 원수 윤필상의 종사관으로 출전하여 군중대소사를 임기웅변으로 치밀한 계획을 세워 오랑캐의 소굴을 소탕하고 개선하여 명나라 황제가 칭찬하고 후하게 상을 주었다. 이조 참의를 거쳐 충청도관찰사가 되었더니 얼마 아니되어 한 게급 올리고 또 지방안찰사로 있을 때 치적이 있어 가자(加資)를 받았다. 이어 경상, 강원도관찰사를 지냈으며 사헌부 대사헌, 호조, 병조, 예조의 참판을 거쳐 형조판서에 승진되고 광산부원군(光山府院君)에 책봉되었으니 특별한 은전이었다. 시호는 충목공(忠穆公)이고 1813년(순조 14) 무주의 도산사(道山祠)에 배향되었다.
묘(墓)는 무주군 안성면 미륵암에 있고 안성면 사전리 동구에 신도비(神道碑)가 있다.
(見朝鮮王朝實錄, 國朝文科榜目, 韓國故事大典, 虛白堂洪貴達撰神道碑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