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세 김 영(金?)

(1577∼1641) 65歲 조선 중기의 문신, 字는 자준(子峻), 호는 계암(溪巖), 아버지는 현감 부륜(富倫)이며, 어머니는 의인(宜人) 밀양박씨로 감찰 순(純)의 딸이다.
1612년(광해 5) 증광시 문과에 병과 23인으로 급제하여 권지승정원 정자로 벼슬길에 올라 승정원 주서가 되었는데 북인들이 농간을 부림으로 벼슬을 버리고 고향에 은거하였다. 그 후 나라에서 승정원 일기를 쓰라고 수차 독촉하여 부득이 상경하여 성 밖에서 일기를 만들어 올리고 성안에 들어가지 않고 귀향했다. 1623년(인조 1) 인조반정 후 성균관 직강, 사헌부 지평을 제수하였으나 병을 핑계로 부임치 않았다. 이듬해 봄 다시 형조정랑, 의주판관, 예조정랑을 제수하였으나 부임치 않았다. 1627년(인조 5) 봄 다시 예조정랑, 사헌부 장령, 1633년(인조 11) 세자시강원 보덕, 사헌부 집의를 제수하였으나 모두 부임치 않았다. 1636년(인조 14) 사간원 사간, 용양위 부사직, 집의를, 1637년 보덕과 사간을 겸하여 불렀으나 병을 핑계삼아 모두 사양했다. 병자호란에는 가재를 털어 군비를 보조하였고 화의가 성립되자 통곡하고 평생 서쪽을 향해 앉는일이 없었다. 숙종 때 도승지에 추증되었으며 순조조에 이조판서 겸 양관대제학에 추증되었다. 시호는 문정공(文貞公)이며 저서로 계암문집이 3권이 있다. 묘(墓)는 안동시 와룡면 나소동에 있다.
(見朝鮮王朝實錄, 尊周錄, 故事大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