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김씨(新羅金氏) 본원(本源)과 광산김씨(光山金氏)]

 

대보공(閼智) 신라(新羅) 제 4대 석탈해왕 9년 을축(서기 65년) 춘삼월에 왕(王)이 밤중에 금성(金城西) 서쪽 시림간에서 들려오는

계명성을 듣고 날이 밝자 사자를 보내어 이를 살피게 하였는데 그가 시림에 이르러 살펴보니

 

금색(金色)으로 된 조그만 궤짝이 나뭇가지에 걸려있고 흰닭이 그 밑에서 울고 있으므로 곧 돌아와서 이사실을 알리니

왕은 매우 기뻐하며 신하들에게 이르기를

 

"이 어찌 하늘이 나에게 아들을 보내준 것이 아니라 하겠는가"

 

하고 이를 걷우어 길렀는데 그는 점점 자람에 따라 아주 총명하고 지략이 많으므로 이름을 알지(閼智)라 하고 금궤에서

나왔으므로 성(姓)을 김씨(金氏)라 하였고 또한 시림을 고쳐서 계림으로 이름하고 이로써 국호로 삼았다.

 

알지(閼智)는 세한을 낳고 세한은 아도를 낳고 아도는 수류를 낳고 수류는 욱보를 낳고 욱보는 구도를 낳고 구도는

미추를 낳았는데 미추가 신라 13대 왕위에 오르니 신라김씨는 김알지로부터 시작되었으니, 이가 곧 신라김씨왕조의

개창조이시다.

 

    알지의 후손 신라 왕자 흥광(興光)이 국난을 예견하고 광산(光山)으로 이적하니 우리 광산김씨(光山金氏)의 시조(始祖)이시다. 시조공의 상계에 대해 헌강왕의 왕자, 신무왕의 왕자 양설이 있지만, 지석이나 이에 버금가는 결정적인 고증자료가 나오기까지는 신라 왕자공으로 하고 근사후일(謹俟後日)하기로 한다.  (자료: 광산김씨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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